침체에 빠진 PC시장을 둘러싸고 세계 양대 업체가 본격적인 혈투에 돌입했다.

세계 1위의 델컴퓨터와 2위의 컴팩은 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메릴린치 하드웨어 설명회에 나란히 참석,''가격인하 전쟁''을 선언했다.

급랭하는 PC시장에서 동사(凍死)하지 않으려면 가격인하로 판매에 불을 지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이들 양대 업체들은 주 전쟁터로 해외시장을 지목했다.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돌입한 미국시장에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에 따라 세계 PC 업계의 동반 출혈이 불가피하게 됐다.

◇선전포고=포문의 수위가 높은 쪽은 컴팩.지난 7년간 부동의 톱을 지켜온 컴팩은 지난 1·4분기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델컴퓨터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이클 카펠라스 회장은 이날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누구보다도 공격적인 가격인하를 펼 것"이라고 선언했다.

델컴퓨터의 방어전에도 자극적인 표현이 동원됐다.

이 회사의 톰 메리디스 부사장은 앞으로 "무자비한(ruthless)" 비용절감이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리디스 부사장은 이어 "비용절감에 기초한 공격적인 가격인하가 컴팩으로부터 왕좌를 빼앗아 올 수 있었던 원동력"임을 상기시켰다.

전문가들은 "델의 비용절감 선언은 그만큼 가격을 공격적으로 내리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우려되는 수익악화=증권사인 UBS워버그는 이날 델컴퓨터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력 매수추천''에서 ''매수추천''으로 한단계 낮췄다.

가격인하에 따른 수익률 악화를 우려해서다.

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인 돈 영은 "현재 PC산업 구조로 볼때 단기 수익성을 희생한다고 장기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델의 계속되는 가격인하는 실적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컴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카펠라스 회장은 "가격인하전이 치열해질수록 수익성은 악화될 것"이라고 자인했다.

◇전세계로 번지는 포화=델컴퓨터의 메리디스 부사장은 미국 PC시장 전망에 대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소비심리가 지금보다 더 악화되면 시장 침체는 앞으로 2년간 지속될 것이다.

반면 소비심리가 유지된다면 올 연말이나 내년초부터 회복된다.

"카펠라스 회장도 "앞으로도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양사는 탈출구를 해외시장에서 찾겠다고 입을 모았다.

델의 메리디스 부사장은 "유럽시장은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아시아는 강세(strong)이며 남미에서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표현했다.

컴팩의 카펠라스 회장 역시 "(미국은 침체지만)해외시장은 안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