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후생상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것은 단적으로 말해 ''바람''의 승리였다.

외국언론도 선거초반의 승기는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에 기울었었다.

하시모토는 자민당내 최대파벌인 하시모토파의 수장이요, 과거 14년간 자민당정권을 주물러온 다케시타파의 적자를 자임했었다.

하시모토파는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급환으로 쓰러진후 밀실타협으로 모리 요시로 총리를 탄생시킨데 이어 모리 총리가 실정과 실언을 거듭하자 사퇴항복을 받아낸 주역이었다.

모리 총리가 고이즈미 전 후생상의 출마를 만류한 것도 당내 역학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게 지배적이다.

또 하시모토 전 총리가 표면적으론 입후보를 내켜하지 않았으면서도 당선을 낙관했던 건 파벌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민심에 바탕을 둔 바람의 힘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또한번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고이즈미 전 후생상이 예선투표에서 표를 거의 싹쓸이한데 이어 중.참의원들이 참가한 본선투표에서 당선되자 일본언론은 바람이 파벌정치를 잠재웠다고 흥분하고 있다.

경제.외교분야의 실책과 무능, 관료들의 부패가 잇따르면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수년간 자민당정권을 비난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가노현과 지바현에 이어 이달 중순 치러진 아키타현 지사선거에서도 자민당 간판 후보가 참패하자 자민당 하부에선 ''이대로는 모두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 왔다.

그러나 파벌간 담합.흥정에 길들여진 당 지도부는 변화와 민심의 소리를 외면했다.

일본 언론은 평당원과 유관직능단체 대표들이 참가한 예선투표야말로 밑바닥 인심을 읽은 자민당 하부조직이 피플 파워를 등에 업고 지도층을 강타한 혁명적 사건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일본은 외국언론들로부터 ''경제는 일류지만 정치는 삼류''란 조롱섞인 비난을 면치 못해 왔다.

그렇지만 자민당 총재선거는 일본도 달라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층의 저항을 깨부순 고이즈미 바람은 ''민심이 천심''임을 한국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본보기에 다름 아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