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80년대에 미국기업들은 다각화를 핵심 전략으로 채택하고 앞다투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은 기존 사업의 활발한 철수와 매각을 통해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전문화된 구조로 바꾸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미국기업의 다각화전략 추세에는 이처럼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다각화추세의 변화는 어떻게 설명될까=다각화 추세의 변화는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의 합리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란 주장이 있다.

즉 경쟁이 격화된 80년대 들어서는 다각화된 사업구조는 기업자원과 능력의 분산을 가져왔다.

한정된 역량을 소수의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전문화된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 것.또 이전에는 자본시장이 비효율적이어서 기업들이 다각화를 통해 기업내 내부자본시장(internal capital market)을 형성할 수 있었고 이는 자금의 효율적인 배분으로 이어졌다.

전문화된 기업에 비해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점차 효율적인 외부자본시장이 형성됨에 따라 이러한 다각화의 이점은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80년대 이전에 적극적인 다각화를 추구하고 80년대 이후에 다각화된 사업을 축소하는 전략을 구사한 기업의 경영성과는 향상됐을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다각화추세 변화가 환경변화에 따른 기업의 합리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 다른 주장은 다각화가 최고경영자 개인 이익을 위해 추구된다는 것이다.

사실 다각화는 최고경영자 개인입장으로 볼 때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선 다각화는 위험분산효과를 통해 기업의 파산위험을 줄이고 이는 최고경영자 개인의 고용이나 명성에 있어서의 제반 위험을 감소시킨다.

다각화를 통해 기업 규모가 커지면 최고경영자의 보수와 사회적 영향력 및 명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다각화는 최고경영자가 주주의 이익보다 이같은 자신의 개인적 이해를 위해 추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많은 국내외 기업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으로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각화 추세의 전반적인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만약 다각화가 최고경영자 개인 이익만을 위해 이뤄진다면 왜 80년대 이후에는 많은 기업들이 다각화된 사업의 축소에 열중했을까.

그들이 진정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기업 전체만을 생각하는 이타주의자로 바뀌어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각화추세의 변화는 경영패션이다=그렇다면 다각화전략 추세의 급격한 반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 저널,비즈니스위크,포춘,파이낸셜 타임즈 등의 신문이나 잡지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다각화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와 비호의적인 기사의 비율을 연도별로 분석해봤다.

이 비율의 분포는 그 기간 동안 기업들이 실제 다각화를 추구한 정도의 분포와 1~2년의 시차를 두고 일치한다.

70년대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사업포트폴리오모델(business portfolio model) 등 다각화에 대한 여러 경영기법과 다각화를 통해 성공한 기업의 사례 등 호의적인 기사가 주종을 이뤘다.

반면 70년대 말부터는 "다각화기업의 종말(the death of conglomerates)" "위험한 또는 재앙을 가져오는 다각화(dangerous or disastrous diversification)" "자신이 하던 사업에 전념하라(stick to knitting)" 등의 다각화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대다수였다.

이는 기업의 다각화에 관한 의사결정이 그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견해 즉 "경영패션(management fashion)"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컨설팅회사나 대중매체 그리고 경영학자와 같은 여러 패션창시자(fashion setters or creators)들은 각 시기마다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특정의 바람직한 다각화방향이 있는 것처럼 주장해 왔다.

바로 다각화에 있어서의 경영패션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시기에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다각화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어떤 기업은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반면 어떤 기업은 성과가 극도로 저조했다.

전문화된 기업 가운데에도 어떤 기업은 성공하고 또 어떤 기업은 실패한다.

이것이 다각화에 있어서의 경영현실이다.

한국기업의 현실을 보면 패션창시자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다각화에 관한 특정 패션창출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패션창시자들은 바람직한 다각화의 정도는 각 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또 특정시점에서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바람직한 다각화의 정도가 있다는 식의 패션을 만드는 일을 피해야 한다.

동시에 패션채택자(fashion adopters)로서의 기업 특히 최고경영자는 단지 맹목적으로 패션을 추종하지 않고 명확한 외부 환경분석과 사업내용 파악을 해야 한다.

잠재적 시너지의 정도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각 사업을 조정할 수 있는 경영능력을 고려해 다각화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감의 부족으로 인한 맹목적인 패션추종은 최고 경영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태도다.

박철순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