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사장으로부터 칼침 맞고,회사 동료에게 청부살해 당하고,투자자로부터는 자금 변제 압박에 시달리고..."

자금 경색이 다소 풀리면서 벤처업계의 겨울도 끝나가는 요즘이지만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는 벤처기업인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몰아닥친 벤처 거품의 후유증이 채 걷히지 않은 탓이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반도체장비업체인 S사의 사장실에서 최근 피를 부른 사건이 있었다.

S사의 S사장이 협력업체 사장으로부터 칼에 찔리는 봉변을 당한 것.

이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사장 옷에 피가 흥건히 젖어 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 관계에서 생긴 마찰 때문"이라며 "당사자가 구속돼 해결됐다"고 밝혔지만 S사장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패션과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C사의 P사장은 지난해 창업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엔지니어인 그는 자체 솔루션을 가진 덕분에 지난해 60억원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금을 중간에서 조달해준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되돌려 달라는 협박과 독촉을 받는 통에 회사일엔 아예 손을 놓고 있다.

빌려준 것도 아닌 투자한 자금을 갚아주느라 자본금을 거의 까먹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직원들의 항의에 자본금에서 빼낸 돈으로 퇴직금을 나눠주고 있다.

밤에 다리도 제대로 뻗지 못한채 공포에 떠는 기업인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드러내놓고 말을 못할 뿐이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게 벤처업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폭력조직과 연계된 ''검은 자금''인줄 모르고 썼다가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벤처기업인도 있다.

또 유망 환경벤처기업인으로 주목받던 A사의 K사장은 지난 2월 직원의 사주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살해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건이 일어나게 된데는 물론 벤처기업인이 원인의 일단을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사건들을 계기로 협력업체와의 공정거래,직원들과 동고동락하는 경영 등 정도를 걸어왔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사회 분위기다.

벤처가 무엇인지,비즈니스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벤처에 투자하거나 이들 기업과 거래해놓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협박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풍토에서 기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게 벤처기업인들의 항변이다.

"요구할 것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법이나 제도의 테두리안에서 해야지 주먹으로 이루려고 한다면 이제 막 싹을 틔운 벤처는 얼어죽을 수밖에 없다"며 "이런 풍토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벤처기업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