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리 < 씽크프리 공동창업자 >

한국 문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이벤트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갓 태어나 어리둥절한 아기의 백일째 되는 삶을 축하해 주는 백일잔치에서부터 시작해서 돌잔치,입학식,졸업식,신년 시무식,동창회,약혼식,결혼식,장례식,제사,새벽예배까지 숨가쁘게 이어진다.

이런 각양각색의 이벤트는 다양한 현대 도시 생활을 대변하듯 삶의 변두리와 중심 이곳 저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벤트를 들여다보면 이벤트의 내용과 결과보다는 "돈을 많이 들인 그런 이벤트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와 이벤트에 "얼굴을 보이고 왔다"는 참여 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소득없는 이벤트에 초대받지 않거나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두려워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형식주의 사회"를 목청 높여 비판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선 결국 형식의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들어 한국 벤처기업들의 미국을 비롯한 해외 진출 이벤트가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의 벤처기업들의 활동은 컴덱스행사장에 찾아오는 전세계 고객이나 외국인 투자자에게서 인기를 끌어 모으는데 중점을 두지 않고 있다.

돈을 들여 참가하는 벤처 기업들 사이에서의 인기몰이에 그치고 만다.

뚜렷한 목적과 준비없이 단순히 국내 홍보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또는 돈을 많이 들였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해외로,해외로 나가는 벤처 기업들.전시회 참가만을 목적으로 참가한 회사들은 그 곳에서 비슷한 처지의 동지들을 만난다.

행사장에서 그들은 이웃에 있는 동지들끼리 서로 한국말로 위로하면서 파리만 날리고 돌아온다.

세계각국에서 모인 기업들간의 열띤 홍보전에 뛰어들어서 승전보를 갖고 오면 좋겠지만 참가했다는 사실 내지는 "얼굴을 내밀고 왔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삼는다.

다녀온 후엔 "역시 해외 진출은 어려워","왜 이 좋은 제품,기술을 몰라줄까"라는 자괴감 외엔 얻은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행태는 정작 이벤트의 결과보다는 이벤트 자체를 중요시 여기는 문화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적과 결과가 회사의 생사를 결정한다.

형식적인 겉치레로 잠시 화려한 겉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모든 벤처 기업들을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기대하며 철저히 준비해서 참가하는 벤처기업들도 많겠지만 경험 미숙으로 허탕만 치고 마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바다위에 떠있는 빙산은 극히 일부분만이 물위로 드러난다.

그 조그마한 빙산조각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 수 있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받쳐주고 있어야 한다.

컴덱스나 기업해외홍보는 사실 물위로 드러난 조그마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컴덱스와 해외홍보에 참가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전과 사후에 엄청난 마케팅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에 진출하려면 유창한 영어는 둘째치고라도 준비할 것이 수없이 많다.

기본적으로 시장과 경쟁자 분석,포지셔닝,행사요원들의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엘리베이터를 타고가는 동안의 짧은 시간에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습득,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 등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현지인이 제작한 브로셔,미국식 데모방식,미국식 부스 등 하찮게 생각되지만 꼭 필요한 것들도 완비돼 있어야 한다.

투자자 설명회에서 쓰이는 자료는 간단명료해야 한다.

내용물에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것들로는 시장 가능성,제품 기술,경영진,수익모델 등을 들 수 있다.

회사의 연혁을 길게 설명하는 등의 전형적인 한국식 투자설명 자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문으로 만들어진 비즈니스 플랜 작성과 프리젠테이션에는 현지언어와 비즈니스 프리젠테이션에 능숙한 현지사람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리젠테이션 내용은 "과연 우리의 제품이 훌륭한 비타민임을 강조하기 보다,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진통제"임에 대해 확신을 주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