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9시뉴스입니다. 우리 사회의 주축인 30,40대 가운데 이민대열에 오르는 사람이 크게 늘면서 자칫 사회 기반이 흔들리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들로 하여금 고국을 등지게 하는 주된 이유는 자녀교육이라고 합니다''

이런 뉴스를 듣고 지난 겨울 미국 여행의 몇 장면이 연상됐다.

나와 아내는 오랜만에(24년 만에)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유학중 오래 살았던 하와이에도 들러 보고,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작은 도시에서 2주일 이상 머물기도 했다.

한달 동안의 미국 여행에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건물도 미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에 있는 한국인''이었다.

미국 대학마다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내가 유학했던 미국 한복판의 캔자스대학에는 60년대 당시 한국 학생이 모두 23명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2백30여명의 한국 학생이 있다.

미국에 유학중인 외국학생수는 모두 50여만명인데, 중국(5만1천), 일본(4만6천), 한국(4만)의 순서라고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여행하는 한국 사람도 엄청 많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분명히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는 것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도 많다.

KBS가 뉴스로 보도한 바로 그런 30,40대들이었다.

아마 그런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녀 교육을 걱정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이민을 가고 있는 듯하다.

TV 뉴스는 이민의 주요 이유로 교육을 들고 있었다.

우선 한국에서의 교육 비용이 문제다.

초등학생 때부터 심한 경우는 과외 비용이 한달에 1백50만원이 든다니 30,40대 가장이 이런 교육비를 감당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교육 때문이라며 드는 또 한가지 이민 이유는 영어 교육이다.

어차피 영어를 배워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제대로 가르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엔 이민의 이유로 교육 못지 않은 또 하나의 ''불안감''이 있다.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이야 한명도 없고, 경제 구조의 개혁이 불가피한 것이야 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자리가 없어진다면 어찌 살란 말인가?

그것을 걱정 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지금 격변(激變) 전야(前夜)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제발 남북 당국자들은 자기 평생, 또는 자신의 임기중 무언가 이룩하겠다고 서두르지 말고, 통일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만 전력을 바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장년층의 이민 풍조는 바로 한국 과학기술의 모습과도 관련성을 갖는다.

내가 미국 유학하고 있던 시절은 바로 세계적으로 ''두뇌 유출(brain drain)'' 문제가 심각해졌던 때였다.

미국 등 선진국에 개발도상국의 고등교육을 받은 머리들이 모두 몰려가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균형으로 치닫던 세상을 이런 ''두뇌 유출''은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 문제를 세계의 지식인들이 주목해 비판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때문에 미국은 우리나라에 과학기술 원조를 해주기로 결정했던 셈이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1966년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였고, 그를 계기로 상당수의 한국 과학자들이 미국 등에서 귀국해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한국의 두뇌가 다시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그동안 돌아왔던 두뇌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으로 U턴(거꾸로 돌아감)하고 있다고도 전한다.

실제로 우리는 과학기술의 진흥을 위해 지난 30년 동안 그리 나아진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과학 밖의 세상에는 여전히 부패와 불합리가 판치고, 과학 내부 역시 그 영향도 있어서, 밝고 맑은 연구개발의 분위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그 돈이 이 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합리적 배분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민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우리가 한사람에 3억원 이상을 들여 전문가를 길러 외국 좋은 일만 시킨다는 뜻에서 만이 아니다.

자기가 태어나 자란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야 말로 우리 모두의 앞날에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