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끔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문화적인 추구를 한갓 사치나 획득해야 할 메달처럼 경쟁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전시대에 엘리트 스포츠를 지향하면서 큰 대회에 나간 선수들이 메달을 몇 개나 땄는가에만 관심을 갖는 사회적 분위기가 40대 사망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빚어낸 것이라든지,1년에 몇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축구팀을 운영하면서 정작 학생들은 체육시간에 공 한개만 운동장에 던져주고 그 시간을 때우게 한다든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터였다.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문화부 올해 주요 업무계획 보고가 있었다.

적은 예산으로 여러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문화부 예산이 1%가 넘는 최초의 정부답게 문화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지수상의 사실이다.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 시대부터 되풀이해오던 탁상 계획이 올해도 변함없이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문화산업의 자본화에 눈뜬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런 거친 사고가 내게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 가장 큰 문제점은 정책입안자들의 조급성이다.

''문화의 육성''이란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님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경우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금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은 못 했지만 고평을 받으며 대상인 금곰상까지 논의됐던 이 영화는,소설가 박상연의 ''DMZ''를 영화화한 것이다.

처음 이 작품이 나왔을 때 문단에서나 독자들에게서는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그 동안 사회 상황적 금기를 깨뜨리면서 이미 많은 것을 선취한 중요한 소설이었다.

이 무명작가의 소설은 영화 관계자들에 의해 다시 한번 태어났다.

이런 두번의 큰 선취 속에서 이 작품은 만들어진 것이다.

한 시대를 감싸고 있는 내러티브(이야기체)의 구조라는 것은 공상이나 환상만으로는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취돼야 할 무엇이고,알을 깨는 아픔에서 새로 태어나야 할 그 무엇이다.

그것은 많은 문화적 인프라를 토대로 하여 꽃피우게 된다.

문화부의 업무계획 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은 문화콘텐츠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우리나라 문학작품 중에도 충분히 노벨상 후보가 될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고 했다 한다.

물론 이런 지적 외에도 많은 훌륭한 말씀이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문화는 일회적인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좋은 우리 문학작품을 많이 번역해 낸다고 해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행정으로 큰 도서관은 대도시마다 많이 들어섰지만 소프트웨어라 할 양서는 구비돼 있지 않은,그저 ''어디서 좀 기증해주는 데가 없나''하고 바라보는 듯한,참으로 열악한 독서 환경,집필 환경,작가에 대한 예우는 도외시하고 노벨문학상을 향해 또다른 경주에 나서려는 듯한 문화부의 업무계획이 실망스럽다.

어떻게 뿌리를 북돋우지 않고 꽃을 피우겠다는 것인지. 예컨대 중요한 중진작가의 소설집을 초판 3천부도 다 소화하지 못 하는 우리의 현실을 알고나 있는 것인지….어떻든 번역을 해서 해외시장에 내놓는다고 하자.요즘 유행하는 말로 시장 경쟁력없는 작품이 널리 읽힐 리도 만무하고,따라서 책을 공짜로 줘도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은 뻔하다.

며칠 전 이문열씨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미국 메이저 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왔다.

반가운 일이다.

한국 작가는 인세를 받고,현지의 1급 마케팅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세일즈할 수 있는 이런 케이스를 많이 만들기 위해 문화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화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고,이번에는 씨를 뿌리고 언젠가 먼 후일 오는 사람들에게 꽃을 피우게 하겠노라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는 일이다.

문화부는 국민을 향해 문화적 서비스를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지,문학상 획득에 더 큰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suk@maum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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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출판사 마음산책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