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꽃보다 아름답고 인생은 영화보다 극적이다.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한인 화가 신순남(니콜라이 세르게이예비치.72).1937년 러시아 국경지대에 살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 황무지로 강제이주당할 무렵.

아홉살 소년이었던 그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강제이주 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44m에 달하는 신화백의 연작 "레퀴엠"은 그속에서 희생된 카레이스키들을 위해 붓끝으로 토해낸 진혼곡이다.

스탈린 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33세부터 60세까지 그려낸 필생의 대작.한 서구 평론가는 그의 "레퀴엠"을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비하기도 했다.

35mm다큐멘터리 "하늘색 꿈"은 신화백의 대표작 "레퀴엠"과 그의 굴곡진 삶을 통해 한민족의 뼈아픈 역사속 한 자락을 들추어낸다.

열악한 제작환경을 극복하고 4년만에 맺어진 인고의 열매는 올 서울 국제다큐멘터리 영상제 대상,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을 연이어 거머쥐었고 내년 1월 중순 파리에서 열릴 국제영상제에까지 진출한다.

다큐멘터리 불모지나 다름없는 이땅에서 겁도없이 데뷔작으로 다큐멘터리를 택한 여자.기획 시나리오 제작 감독 음악선곡까지 도맡은 김소영 감독(32)은 "역사적 격동에 휩쓸린 한인 화가의 이야기지만 나아가 파시즘에 희생된 모든 세계인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충무로 연출부에서 일할때부터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었어요. 픽션이 따를 수 없는 힘이 좋았지요. 97년 1월 신문에서 신화백의 이야기를 접하고 무릎을 쳤죠"

어렵게 노화백의 응낙을 얻자마자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의 문을 무작정 두드리며 제작비를 구했다.

무명감독의 데뷔작,게다가 여성감독.아무도 그 손을 쉽게 잡아줄리 없었다.

힘겨운 지난날이 스쳤을까.

이내 눈물이 그렁인다.

"제일 힘들었을때 신화백이 더듬거리는 한국말로 말씀하시더군요.
내나라가 아니어서 도와줄 수 없지만 타슈켄트에 오면 도와주리라.아스팔트를 뚫고도 풀포기가 자라는 것처럼 젊은이다운 용기를 버리지 말라"

그렇게 용기를 얻어 견뎌온 4년여.그의 뜻과 성의에 감동해 도움의 손길도 많이 왔다.

대우등에서 5천만원을 얻어냈고 튜브 엔터테인먼트에서 3천5백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이영조 예술원 교수와 첼리스트 정경화씨는 음악과 연주곡을 헌정했다.

"고향에 갈 수 있을까. 갈수없겠지.그래도 꼭 가고싶어""부모님 무덤에 조국흙을 뿌려드렸시요. 덮고 주무시라고"

나레이션 없이 인터뷰,자료화면,영상으로 조형되는 역사의 비극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가슴한쪽이 젖어온다.

"영화가 신화백,나아가 강제이주된 카레이스키들의 수난과 극복의 발자취와 작품이 닮아있기를 바랬는데 어느정도는 해낸 것 같아요.
보고난 관객들이 끝나고 다가와 손을 꼭 잡아 주시곤 합니다. 고생했다며 막무가내로 돈봉투를 찔러주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아직 관문은 남았다.

해외영화제에 가려면 후반 보정이 남았고 스폰서가 필요하다.

일반 극장에 걸려는 꿈을 이루려면 배급라인도 잡아야 한다.

"쉽지 않겠죠.하지만 그동안 해온대로 계속 두드려 보려고 합니다"

작고 왜소한 어깨가,주름진 손등이,깊게 패인 눈가가 아름다운 신화백.그리고 작지만 강한 여자 김소영.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