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총체적인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정부의 리더십이 약화되고 시장 믿음을 떨어뜨려 한국경제를 더 불안케 만든다고 연구기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중인 당정쇄신에선 정책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관료들의 독단을 견제하기 위한 의견수렴 장치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또 일부 장관교체 식의 처방보다는 관료사회의 대수술 등 극약처방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 정부말 믿으면 손해 =금융시장에서 정부의 ''말발''이 안먹힌지 오래다.

작년 대우채펀드 환매자제처럼 정부의 ''협조요청''에 응하면 나중에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채권시장안정기금이나 1,2차 채권형펀드를 조성할 때마다 금융기관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은행감자(減資.자본금 감축)는 없다''는 말만 믿고 은행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완전 감자로 큰 피해를 보게 됐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대다수 직원들이 한빛은행 주식을 샀는데 이젠 아직도 정부말을 믿었냐고 위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7.11 노정합의때 정부는 금융노조에 러시아경협차관, 한아름종금 차입금, 수출보험공사 보증 등 7조원을 조기에 갚겠다고 약속했지만 거의 식언(食言)이 됐다.

박희민 금융노조 홍보부장은 "재경부는 기획예산처가 예산을 배정해 주지 않았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 장관 바뀔 때마다 달라진다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은 공적자금 추가조성과 은행 감자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진념 재경부 장관은 공적자금 40조원 추가조성안을 국회에 제출해 동의를 받았고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6개은행의 완전 감자를 단행했다.

건교부는 지난 10월 수도권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틀뒤 민주당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타당성이 부족하고 당정협의도 거치지 않았다"고 부인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했다.

생보상장안은 금감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변질되다가 1년반만에 급기야 없던 일로 돼버렸다.

4대그룹 출자전환에 대해 장관들이 ''된다'' ''안된다''고 딴 목소리를 내 현대건설 처리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다.

우량은행간 합병에 대해선 장관들이 지난 9월부터 "이달중 합병 가시화"를 되풀이했지만 계속 진행형에 머물러 있다.

◆ 전문가 시각 =전문가들은 정책 난맥상을 타개하지 않고선 정책신뢰나 경제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곽창호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것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에 우선하고 가장 심각한 금융문제에 제대로 대처못한 탓"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원칙대로 가지 않으면 헤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위평량 경실련 정책부실장은 "장관 한 사람이 책임지고 추진할 일은 거의 없다"면서 "그 밑의 실.국장들의 보직변경 등 자극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국민 주택은행의 합병을 추진하다 노조반발로 일단 접은 것은 정부의 정치.경제적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