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증시가 동반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 미국의 나스닥 지수는 연초에 비해 34% 하락했고 다른 국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증시부양론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물론 이번 세계 경기의 특징을 감안하면 증시 부양은 그 어느 때보다 경기 부양의 성격이 짙다.

이번주 19일과 내년 1월말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첫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회의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지난 9월 이후 미국 증시가 하락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예의 주시해야 할 대목은 미국의 경제 주체들이 시장의 힘을 믿고 시장을 조성해 나가면서 시장이 보내는 신호에 철저히 순응하고 있는 점이다.

무엇보다 증시와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일수록 더욱 신중해지는 정책당국자들의 처신이 돋보인다.

그린스펀 FRB 의장을 비롯한 어떤 정책당국자도 나서서 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발언과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오히려 시장현실을 읽는 데 주력해 시장참여자들이 정확한 안목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정책당국자의 의견을 밝혀야 할 경우에는 사전에 예고된 장소에서 다른 시장참여자들과 같은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그만큼 시장흐름을 존중하면서 시장참여자들의 자율적인 조정기능을 바탕으로 경제안정을 도모해 간다고 볼 수 있다.

시장참여자들도 정책당국자의 말을 믿고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

최근 내년도 전망을 발표하고 있는 월가의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를 낙관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FRB가 금리인하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

기업들도 시장에서 보내는 신호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올해 3·4분기 이후 실적이 악화되면서 대부분 미국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동시에 자신들이 처한 입장을 투명하게 밝혀 주주 및 소비자와 같은 이해관계자들의 협조를 구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미국 증시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국내증시가 좀처럼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함에 따라 증시부양론이 고개를 든 지 오래다.

문제는 경제 주체들의 시장행동이 미국과 비교할 때 크게 차이난다는 점이다.

특히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일수록 시장에 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정책당국자의 태도를 보자.일단 시장을 판단하는 발언을 너무 자주 한다.

동시에 시장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만한 정책을 강연회와 같은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장소에서 쉽게 발표한다.

최근 들어서는 한건 올려야 된다는 강박관념에서인지는 몰라도 말을 바꾸는 사례도 자주 목격되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책당국자들의 시장 판단과 발표된 정책이 시장현실과 동떨어지거나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최근에는 정책당국자의 발언과 정책당국이 내놓은 정책에 대해 정책수용 계층이 반응하지 않는 ''신뢰상실'' 단계에까지 와 있다.

시장주도 세력들도 너무 쉽게 시장을 판단하는 자료를 내놓는다.

일례로 올해초 대부분 증권회사들은 연말 종합주가지수가 1,300∼1,600선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 530선 대에 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업과 투자자들은 항상 피해자라는 인식에 젖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될 수 있는지 여부는 경제 주체들이 시장을 신뢰하고 시장을 조성해 나가면서 시장이 보내는 신호에 순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장에 반하는 발언을 자주 하는 사람일수록 궁지에 몰리면 ''시장''을 더 찾는다는 점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