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는 ''인상파와 근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내년 2월27일까지 펼쳐지는 이 전시회에는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세계미술 명품들을 선보인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에는 인상주의 대표작가인 모네,르누아르,드가를 비롯해 사실주의 작가인 밀레와 쿠르베,후기 인상주의 작가인 반 고흐,세잔의 대표작들이 포함돼 있다.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예술적 성가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이중에는 우리들의 눈에 익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이삭줍기''가 있다.

한국에는 오지 않았지만 ''이삭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종''(캔버스에 유채,55.5X66㎝,1858∼59년 작)을 소개한다.

밭에서 하루 일을 끝낸 부부가 종소리를 들으며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아주 평화스럽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일을 마친 다음에 오는 뿌듯함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와 닿는 것 같다.

밀레가 ''만종''을 발표했을 때 비평가들은 이 그림을 새로운 화풍이라고 크게 칭찬했다.

저녁 노을에 물든 지평선을 배경으로 기도하는 부부의 경건한 자세가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노란색으로 밝게 처리된 노을이 앞의 어두운 땅과 대비돼 해질녘임을 암시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교회에서 저녁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밀레는 파리에서 생활하다가 콜레라가 창궐하자 콜레라도 피할 겸 가족들을 데리고 바르비종으로 내려갔다.

이 마을에는 밀레 외에도 풍경이나 농민들의 생활을 그리고자 찾아온 화가들이 많았다.

1835∼1870년께 파리 근교인 퐁텐블로 숲 외곽의 바르비종에 머물며 활동한 일단의 풍경화가들을 ''바르비종파''라고 일컫는데,밀레는 자연과 어우러져 일상적인 노동에 전념하는 농부나 목자를 주제로 삼았다.

''만종''은 1천프랑에 다른 나라로 팔려 나갔다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작품이다.

그런데 프랑스에 돌아왔을 때의 값은 처음 팔렸을 때의 8백배나 되는 80만프랑이었다.

이는 ''만종''이 얼마나 인기있는 그림인지를 알 수 있는 실증이 아닐 수 없다.

노르망디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밀레는 셰르부르에서 그림 공부를 한 후 1938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인물의 개성을 명확히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교과과정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밀레는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를 모사하면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는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팔았다.

1848년 살롱에 ''키질하는 농부''를 내놓았다.

이 작품은 좌파적인 성향으로 표현되고 해석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혁명정부 임시내각의 좌파 내무장관인 르드뤼 롤랭이 이 그림을 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국가의 공식적인 작품 주문까지 받게 된다.

월간 art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