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의 추가자구안을 구조조정위원회가 뒤집고 구조조정위원회의 수정안을 현대상선이 반박하는 등 현대그룹의 경영시스템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다.

현대는 6일 주식시장 등의 초미의 관심사인 추가자구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채권단을 설득시킬수 있는 확실안 자구안이라고 발표한 내용을 불과 5시간만에 번복하는가 하면 수정안에 대해서도 계열사가 강력히 반발하는 등 혼미한 상황을 연출했다.

현대의 자구안에 대한 시장의 불신으로 주식시장이 혼조세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우왕좌왕"으로 인해 현대의 신뢰도는 더욱 추락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문제가 현대의 실질적 오너인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그룹 지배구도와 관련된 것이어서 향후 정 회장의 경영권 행사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1차 발표 (오후 1시45분) =현대건설 손광영 홍보담당 이사는 10층 기자실에 올라와 기자간담회를 자청, ''현대건설 회사살리기에 나섰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정 회장이 본인 소유 계열사 보유주식을 전량 매각해 현대건설 자구에 쓰겠다는게 요지다.

그리고 자세한 보유주식 상황과 총금액이 8백70억원에 달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정 회장이) 현대건설의 경영 정상화에 대한 본인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형식적으로는 정 회장이 다른 계열사에서는 손을 떼겠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즉 쓰러져 가는 건설을 살리기 위해 수익성이 높은 상선 전자 증권 등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배를 포기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반응이었다.

◆ 2차 발표 (오후 6시30분) =현대는 이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차 발표 5시간 만인 오후 6시30분 명의도 없이 ''알려드립니다''라는 한장짜리 자료를 내놓았다.

"정몽헌 회장은 평소 현대건설의 대주주로서 사재출자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현대건설 유동성에 기여코자 하나 오늘 현재까지 본인이 보유한 주식을 어떤 형태로 정리할 것인지 매각시기 및 규모를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라는 내용이었다.

대신 현대건설 유동성 지원을 위해 현대상선이 보유중인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 주식 매각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마저 확정된 방안이 아니라 주식매각의 규모와 스케줄을 향후 확정하겠다는게 현대의 입장이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 회장이 알짜 계열사에 대해 지배를 포기하고 건설을 살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것.

현대는 이에 대해 ''첫번째 자료는 현대건설이 만든 것이고 두번째 자료는 구조조정위원회가 정몽헌 회장의 의견을 듣고 작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회장이 아직도 현대그룹에 대한 지배권에 연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대목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 현대상선의 반발 =당사자인 현대상선은 전자와 중공업 주식을 팔라는 그룹 구조조정위원회의 발표에 강력히 반발했다.

강성국 현대상선 홍보실 이사는 "김충식 사장에게 현대PR사업본부의 발표를 보고했으나 김 사장은 이같은 내용은 사전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또 회사의 공식입장은 현대상선은 보유주식을 매각지 않는 것이며 이 입장은 이사회에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룹 구조조정위원회의 방침이 정몽헌 회장의 핵심계열사에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대해 현대 구조조정위원회는 현대상선이 방침을 전달받지 못해 부인했을 뿐이라며 사재출연과 상선의 전자및 중공업 지분 매각을 모두 추진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위원회의 방침이 그대로 시행될지는 극히 의문인 상황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