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M&A(인수합병)가 잇따르고 있으나 매수청구가격(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을 해당회사에서 사주는 가격) 산정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코스닥시장의 혼란이 우려되고 있다.

당장 본질가치를 기준으로 매수청구가를 산정,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한 대양이앤씨와 진두네트워크에 대해 투자자들이 집단소송도 불사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시장질서를 유지시켜야 할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현실보다는 법규정 ''타령''만 하고 있어 코스닥의 불확실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法)대로'' 와 ''주주 존중''=같은 코스닥 기업인 데도 주식매수청구가격을 산출하는 방식이 다르다.

지난 16일 비상장(등록)법인을 흡수합병키로 결정한 피코소프트는 주당 2만8천79원의 매수청구가격을 제시했다.

피코소프트의 곽명희 기획팀장은 "증권거래법에 따라 시가(코스닥 주가)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주주 권리를 최대한 존중해주기 위해 시가 방식을 택했다는 게 곽 팀장의 얘기다.

반면 지난 10일 진두네트워크를 흡수합병한다고 발표한 대양이앤씨는 시가와 비교해 턱없이 낮은 기업본질가치를 매수청구가로 제시했다.

대양이앤씨는 상법을 내세워 코스닥기업으로서 굳이 시가(주가)를 반영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강조했다.

대양이앤씨 관계자는 "매수청구 부담을 안지 않고 M&A를 원활하게 가져가기 위해 본질가치를 기준해 매수청구가를 정했다"며 합법임을 강조했다.

한국증권연구원의 김형태 박사는 증권제도상의 미비점 때문에 이같이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매수청구가 결정에 대한 코스닥 조항을 증권거래법에 넣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일관성 없는 금융감독원=기업들은 금융감독원에 합병신고서를 제출해 ''OK 사인''을 받아야만 본격적인 M&A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최근까지도 금감원은 합병신고서를 접수하려는 코스닥 기업들에 시가를 반영한 매수청구가를 제시할 것을 요구해 왔다.

매수청구 부담에 굴복해 지난달 합병을 포기한 주성엔지니어링도 시가를 반영한 주식매수청구를 제시했었다.

이 회사의 김동식 IR팀장은 "시가보다 낮은 기업본질가치를 매수청구가로 제시하려 했으나 금감원 담당자가 투자자 보호를 내세우는 바람에 시가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금감원은 거래소 상장 기업과 달리 코스닥기업에 대해선 매수청구가 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거래소방식(시가반영)을 준용토록 지도해 왔다.

소규모 합병에 가까운 벤처기업 자회사의 흡수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예외없이 코스닥 기업에도 시가방식을 따르도록 유도해 왔다.

그러나 대양이앤씨와 진두네트워크 합병에 대해선 시가 대신 본질가치를 인정해줌으로써 금감원 스스로가 코스닥시장의 불신을 자초했다.

금감원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시하지 않고 있어 기업 및 투자자들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단지 금감원의 관계자들은 비공식적으로 "시가원칙을 강요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벤처기업들의 원활한 M&A를 위해 앞으로 코스닥기업들은 시가를 반영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말만 흘리고 있다.

◆투자자들의 분노=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매수청구권이 M&A의 걸림돌로 작용하자 재경부와 금감위는 지난해 2월께 기업들의 주식매수청구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증권제도를 손질을 했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매수청구가 산정에서 최근가격 반영비중을 높이고 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금감원은 업종지수 하락분을 감안해 매수청구가를 인하 조정해주도록 제도가 변경됐다.

D증권 코스닥팀장은 "IMF 특수상황에서 기업들에 유리하게 고쳐진 매수청구가 결정방식도 수용하지 못하는 코스닥 기업은 투자자들의 반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증권사이트의 투자자광장에서는 "시가방식을 거부한 대양이앤씨와 진두네트워크 합병에 대해 ''소송불사'' 등으로 분노를 표시하는 글이 대거 게재됐다.

삼성증권의 박상은 주식운용팀 펀드매니저는 "미국의 경우에도 주식매수청구권처럼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한국처럼 대주주 겸 대표이사가 회사에 대해 전권을 행사하는 풍토에서 소액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주식매수청구권 제도가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한국 증시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홍모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