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훈 < 성신여대 교수.경제학 >

표면적으로 볼 때는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이 급류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조만간 퇴출기업 명단이 발표될 예정이고,그 중에는 재벌급 기업 5∼6개가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언제나 그랬듯 정부정책의 방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정부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자 관련 기업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지만,금융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며 오히려 냉담하다.

이는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재고의 여지가 많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기한 내 완수한다는 방식의 문제점이다.

정부의 발표는 항상 ''3개월 이내에'' 또는 ''금년 하반기 이내에''식으로 기한을 설정하고 이 기간 내에 금융 및 기업부실을 청산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실한 기업은 늘 나타나게 마련이다.

더구나 우리 나라와 같이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국가에서는 성장기업이 있는 반면,경제가 아무리 좋아도 쇠퇴하는 기업이 있게 마련이다.

금융시스템의 하부구조가 취약한 우리 경제에선 기업의 흥망과 관계없이 항상 유동성위기가 있는 기업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번에 만약 부실한 기업들을 모두 청산하다고 해도 또다른 부실기업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또 금융기관의 BIS비율을 8%이상으로 끌어올린다고 해도 다시 이 수준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시장에서는 더 이상 몇월 며칠을 기준으로 깨끗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둘째,부실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의 문제점이다.

발표에 의하면 금감원이 부실기업 판정 가이드라인을 정하고,이를 바탕으로 각 채권은행이 내부 평가위원회를 구성해서 세부평가기준을 작성한다고 한다.

금감원이 종합기획실 역할을 하고 채권은행들은 실무책임을 맡는 구조다.

그러나 매크로 측면에서 작성한 일률적인 잣대는 마이크로 측면에서 개별 기업이 처한 현재 상황과 미래의 변화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다.

금감원의 기준중에서 중심이 되는 기준은 회계자료에 근거한 이자보상비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부실화된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가 23조원에 달했다.

그동안 한국기업의 외국매각과정에서 항상 문제가 됐던 부분은 한국기업 회계장부의 신뢰성이었다.

이제 그 회계장부가 다시 판정기준이 된다.

셋째,부실기업 처리 과정의 문제점이다.

이번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신규자금지원이나 출자전환을 통해 기업은 살고 부실기업 경영자는 퇴출시키는 방법이 주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기업은 부실해졌으나 그 기업의 경영자나 소유주는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얼핏 보면 대단히 환영할만 일이다.

그러나 대개 기업이 처한 현황이나 문제점,그리고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이제까지 경영을 책임지던 주체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외부에서 새롭게 영입된 경영진이 부실화된 회사 문제점을 파악,해결책을 구상하고 이를 실천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 경영주가 제시한 방안이 반드시 실효성 있는 방안이 아닐 수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영입된 경영자가 회사를 살리는 경우는 미국처럼 ''경영자시장''이 발달하고 경제 및 사회구조가 비교적 투명하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 조건 중 한국에서 충족되는 조건은 하나도 없다.

시장에서 원하는 구조조정이란 지금처럼 정부가 기한을 정하고 기준을 정한 다음 방법을 가르쳐주는 방식이 아니다.

시장에서 원하는 구조조정은 간단명료하다.

부실한 기업은 어느 기업이든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확고하고 예외없이 적용된다면 모든 기업들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익성 없는 분야는 과감히 축소할 것이고,부실부분은 어떻게 해서든 털어 내려고 할 것이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영입하건,소유주가 경영을 계속하건 각 기업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경영구조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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