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우리나라 사람들의 담론은 통일이요, 화두는 경제다.

두가지가 단기적으로는 서로 대척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류는 상생인 관계로 몰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은 최소한 공개적으로는 없다.

경제가 잘 돼야 한다는 일 또한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문제는 통일이 남한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 반대의 주장들이 횡행하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철의 실크로드라든가 아시아의 중심축이란 얘기가 이제는 전혀 낯설게 들리지 않는다.

언론 보도들을 접하면 이런 혼란은 더욱 심해진다.

1천억원에 달하는 50만t의 식량을 지원하면서 진지한 논의나 토론 한번 없었다는 불만을 쏟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그런 반론 자체를수구 보수 세력의 반통일적 작태라고 몰아치는 언론도 있다.

나는 교수였으니 지식층에 속해 있을텐데 나같은 사람까지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제를 모르는 내가 어찌 이 논란에 대하여 줏대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까?

통일을 향해 급속히 속도를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남북양쪽의 수도(首都)와 양쪽의 체제를 가능하게 만든 비무장지대의 자리적 성격을 살펴보면서 결국 그런 지리적 성격이 우리의 삶에, 즉 넓은 의미의 우리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를 따져 보기로 하자.

남한의 수도는 서울이고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다.

북한의 수도는 평양이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은 금수산 기념궁전(주석궁)에 안치돼 있다.

청와대의 주산인 북악산은 "하늘을 찌를 듯한 목성의 산(衡天木星)"이다.

게다가 그 위치는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 뒤편이다.

구중궁궝에서도 더 뒤로 들어간 숨어 있는 자리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버티고 있다면 거기 사는 사람의 환경심리적 상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상식의 판단으로도 독선과 독재의 성향을 짐작하지 않을수 없다.

일본 총독 관저로 건축된 청와대 주인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비참하다.

첫 주인인 제3대 총독 사이트는 젊은 장교의 총에 맞아 죽었고, 다음 자는 뇌물을 받았다가 구속까지되면서 총독 자리를 내놓는다.

그 다음도 비슷한 말로를 걸었다.

공직 추방령을 받은 자, 전범으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자, 역시 전범으로 종신형을 받고 복역중 옥사한자, 항복 문서에 서명한자, 어느 하나 자랑스러운 자가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또한 결말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는 남는다.

그 와중에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초 정부 종합청사에 사무실을 만들어 거기서 집무를 하겠다는 얘기를 했던 듯한데 아직 그랬다는 소문은 없다.

평양은 전형적인 "배 떠나가는 모양(行舟形)"의 땅이다.

물길이란게 흐름으로 이어지는 속성을 갖는다.

김일성 주석은 죽을 때까지 50년 세월을 일인 지배 체제를 구축하여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군림했다.

게다가 그 아들이 후계자가 되었으니 그의 지배는 소위 "유훈 통치"란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미 생전에 우상화됐지만 지금은 신격화돼 있다.

하지만 경제적 궁핍이란 무거운 짐을 벗지 못하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1997년 12월18일 아침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주석궁에서 내가 느낀 감회는 아들을 군에 입대시키던 날처럼 표현하기 힘든 착잡한 것이었다.

엄격한 검색과 여러 차례의 소독, 수평 에스컬레이터 길이만 3백m가 넘고 일반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된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빽빽이 늘어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숙과 정적이 감싸고 있었다.

시신은 마치 잠들어 있는 듯했는데 머리와 발치 그리고 양 옆에서 모두 네번 절을 하도록 돼 있었다.

본래 시신의 머리맡에서는 절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고래의 예법이지만 그곳에서는 그곳의 법을 따르게 마련인지라 군말없이 그렇게 했다.

당시 북한의 전력 사정은 최악인 것 같았다.

평양 밤하늘에 별빛이 그토록 맑고 밝게 빛났던 것은 전깃불이 거의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주석궁에서는 24시간 에스컬레이터가 가동된다고 했다.

북녘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에 대한 경의심의 발로였겠지만 나로서는 그런 사태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나는 풍수를 전공하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인간적인 통과 의례를 거쳐 영원한 휴식의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의 시신은 접견실 바로 옆 집무실에 생전의 모습 그대로 누워 있으니 혼란은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을 위하여 온 몸을 바친 사람을 죽어서까지 수고롭게 하는 것으로 비쳐졌다면 나의 지나친 과민반응일까?

여하튼 우리나라는 남과 북이 전혀 상반된 체제로 나뉘어져 반세기를 넘어서고 있다.

이 체제의 보호막 구실을 해왔던 것이 비무장지대(6.25전까지는 38선)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근간 이 보호막은 여기저기가 뚫릴테고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다.

먼저 보호막 구실을 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부터 생각해 보자.

지금 남한에서는 이미 경의선 복원 공사와 이어지는 4차선 국도 공사가 시작되었다.

머지 않은 장래에 경원선과 동해중부선 복원 공사도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국토의 동쪽과 서쪽 끝 그리고 중앙에 세개의 통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 공사는 지뢰 제거 때문에 탱크보다 무거운 중장비가 땅을 다지면서 이루어지게 된다.

비무장지대란 어떤 곳인가?

지구에서는 유일하게 온대지방이면서 인구 최밀집지역 사이에 끼인 50년 자연 희귀의 실험장에 해당되는 곳이다.

온대지방의 쾌적한 자연 조건에서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채 50년을 지내온 데가 이곳 말고 어디 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만약 인위적으로 지금 이런 실험을 하자면 몇조달러의 돈 가지고도 안될 일일 것이다.

진화론의 산실인 갈라파고스 군도의 중요성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오히려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땅이 바로 비무장지대다.

폭 4km에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 이곳을 세로로 갈라 놓는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도로 개설에 의해 파괴된 생태계 변화의 예는 수없이 보고되고 있다.

당연히 의도하지 않았던 인류 최대의 생태 실험장은 순식간에 파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런 제안을 해본다.

주로 터널과 고가도로에 의한 개통을 고려해 보란 것이다.

그리고 다른 통로의 개설은 일절 금지시켜야 한다.

이런 비경제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공법을 제안하는 이유는 당연히 위에서 지적한 자연 회귀의 유일한 본보기적 가치 때문이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북 양 체제가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때를 가정해 보자.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세태는 개인의 이익이 정서적인 민족의식을 앞지르는 상황이다.

말로야 통일을 부르짖지만 실제로 "너의 희생을 바탕으로"라는 전제가 깔리고 그것이 현실화되었을 때도 그런 순수한 마음이 유지될수 있겠는가?

내가 이기적이고 가족주의자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못견뎌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밀려 내려오는 난민들을 수용할 태세는 갖추고 있는가?

체제 붕괴를 손 놓고 방관하고만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있는가?

없다고 하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게다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속성상 돈이 될만한 곳에는 사람이 꼬이게 마련이다.

벌써부터 비무장지대 부근 땅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응변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국회는 비무장지대 남북 양쪽으로 각각 폭 5km 정도씩의 "절대저인 자연보호구역"을 설정하는 입법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이런 제안에 경제성이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일견 격한 제안이 소위 경제적으로는 아기들의 젖냄새 나는 구상유취한 발상으로 넘겨짚일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영원히 국토와 민족을 희생없이 보존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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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1949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 석사
1979-1981년 청주사범대 전임강사
1981-1988년 전북대 지리학과 교수
1988-1992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현재 경산대 객원교수, 환경운동연합 상임지도위원
<> 저서 = 한국의 풍수사상,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 한국의 풍수지리, 한국의 자생풍수, 땅의 눈물 땅의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