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를 하느라 남들처럼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했는데 금메달을 따다니…"

시드니올림픽 양궁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사냥한''한국양궁의 샛별'' 윤미진(17·경기체고2)의 어머니 김정희(46)씨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김씨와 친지들은 19일 윤 선수의 집인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신우아파트에서 TV중계를 통해 ''금 명중''장면을 지켜보면서 눈물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팀 막내인 윤미진이 서향순 김수녕에 이어 ''여고생 신궁'' 계보를 물려받으며 한국양궁의 대들보로 우뚝 선 것이다.

양궁사대에 선 윤 선수는 10대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담대하고 침착했다.

특히 세찬 바람 등 최악의 기상조건에선 오히려 시위가 정확해졌다.

그 앞에선 세계 정상급 선수들도 시위가 떨릴 수밖에 없었다.

윤 선수의 영광은 땀의 선물이었다.

윤 선수의 아버지 윤창덕(54)씨는 덤프트럭 운전기사,어머니 김씨는 식당 종업원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바빠 그동안 딸의 경기에 응원 한번 못갔다.

이날도 김씨는 월차를 내고 금사냥을 지켜봤지만 윤씨는 건설현장으로 일을 나갔다.

1남4녀중 넷째인 윤 선수는 경기 송정 초등학교 4학년때인 93년 "양궁부친구와 함께 하교하고 싶었다"는 엉뚱한 이유로 활을 잡았다.

이후 피나는 수련과 천부적 재능으로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올림픽대표선수가 됐다.

국내대표 선발전은 7개월간에 걸쳐 열려 선수들 사이에선 지옥의 레이스로 불린다.

윤 선수는 태릉선수촌에서 체계적 훈련을 거치며 ''유망주''에서 ''금메달후보''로 발돋움했다.

지난달 덴마크 브론비에서 열린 유러피안 그랑프리 대회 예선에선 올시즌 세계 최고기록인 6백65점을 쏘며 일찌감치 ''올림픽 돌풍''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그가 국제경험만 더 쌓는다면 앞으로 10년간 한국양궁을 이끌어 갈 재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윤미진에게 1점차로 져 은메달을 목에 건 김남순(20·인천시청)도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할 때는 1주일에 한번씩 허용되는 외박까지 반납하고 활을 쏘기도 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 김진택(53)씨와 어머니 심삼순(46)씨의 3녀중 장녀인 그는 월급으로 집안살림을 보조해온 효녀이기도 했다.

그는 경남 창원초등학교 5학년때인 92년 활을 처음 잡은 뒤 지난 96년과 98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성인무대에선 검증되지 않았던 신인이다.

하지만 최근 기량이 급성장하며 마침내 일을 냈다.

동메달리스트인 김수녕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한국양궁의 영웅.

지난 88년 서울올림픽 2관왕일 당시 17세 소녀였지만 이젠 두 아이를 둔 주부로 돌아왔다.

지난해 10월 현역복귀를 선언한 뒤 국가대표선발전에 참가,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어린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올림픽 정상정복에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는 여고 1년때인 87년 제3회 프랑스양궁선수권대회에서 2관왕에 오르며 신데렐라가 된 후 89년과 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우며 정상에 섰다.

지난 93년 은퇴한 뒤 체육교사 이기영(30)씨와 결혼,딸 지영(5)양과 아들 정훈(2)군을 두고 있다.

그는 "단체전이 끝나면 빨리 집에 돌아가 소홀했던 엄마노릇에 충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