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의 생사를 가른다.

그래서 ''기업의 심장''에 비유된다.

이들이 결정한 경영전략에 기업은 울고 웃는다.

제록스의 토먼,코카콜라의 아이베스터,P&G의 야거….

이들의 빗나간 전략은 기업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실패한 CEO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성공한 CEO보다 더 진한 교훈을 남긴다.

불명예 퇴진한 CEO들의 스토리를 연재한다.

99년 4월6일 뉴욕증시.

제록스의 주가급등을 알리는 전광판 불빛이 요란하게 번쩍였다.

주당 60달러.

52달러이던 주가가 단숨에 8달러나 뛰었다.

"리처드 토만 제록스 CEO취임"뉴스 덕분이었다.

경영귀재 루 거스너 IBM회장의 수제자인 토만이 제록스에 제2의 IBM신화를 선사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주가를 달궜다.

토만은 맥킨지컨설팅-아메리칸 익스프레스-나비스코-IBM까지 거스너와 행보를 같이 한 "거스너의 복사판"경영자였다.

그러나 "토만효과"는 짧았다.

취임한지 3개월만인 7월.

주가는 4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렇다할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빠르게 실망감으로 변했다.

당황한 토만은 Y2K불안감에 따른 판매부진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막상 고객들의 제품수요가 최고치에 달했을때 토만은 가격인하를 단행함으로써 악수(惡手)행진을 시작했다.

99년 12월.

4분기 영업실적이 예상보다 40%나 낮을 것이란 발표가 나왔다.

그러자 그의 취임초에 62달러까지 올랐던 주가는 20달러대로 수직낙하했다.

토만은 최후의 "거스너 복사전략"을 빼들었다.

스승 거스너가 IBM에 썼던 전략대로 제록스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복사기회사란 이미지에서 탈피해 문서작성과 보관,관련 소프트웨어에서 컨설팅까지 문서관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원스톱 처리하는 "솔루션"을 팔겠다는 게 제록스 재건의 청사진이었다.

2000년 1월.

대공사가 시작됐다.

공사명은 "영업조직의 재건축".

우선 전국에 흩어져 있던 영업조직을 시카고 1곳으로 일원화했다.

세일즈맨 1명이 담당고객의 업무흐름을 샅샅이 파악한뒤 최선의 문서관리방법 일괄 서비스하기 위해서였다.

제록스 세일즈맨의 절반이상이 이동하는 대공사였다.

새 세일즈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없이 단행됐기에 혼란은 극도에 달했다.

2달후,영업직원들은 고객들의 주문을 확인하고 대처하는데만 근무시간의 40%이상을 낭비하고 있었다.

문서관리 회사인 제록스가 서류더미에 질식되는 아이러니였다.

이 전략은 시기상으로도 최악이었다.

당시 미국기업들은 구인난에 허덕이던 시점이었다.

결국 불만에 찬 세일즈맨들은 경쟁업체인 일본의 캐논 등으로 대거 빠져나갔다.

조직은 흔들리고 판매는 곤두박질쳤다.

지난 4월25일.

"1분기 이익 38% 감소"발표는 토만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그후 2주만인 5월11일,토만은 13개월의 "실패사"를 남긴채 제록스에서 추방됐다.

그의 재임기간동안 제록스의 싯가총액은 무려 2백억달러나 줄었다.

명의(名醫)인줄 알고 토만에게 몸을 맡겼던 제록스는 이제 불치병 환자가 됐다.

증권회사인 살로먼 스미스바니의 증시분석가 조나단 로젠바이그는 지금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다.

"침몰하는 제록스호에서 즉시 탈출하라"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