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측에서 선 계열분리,후 자구안을 내놓는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사람들 또 무슨 꿍꿍이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어야지"

10일 금융감독원의 한 간부와 현대문제에 관해 나눈 대화내용이다.

짧지만 정부의 현대문제 인식수준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현대측의 말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실한 방안을 가져오기 전에는 절대 협상을 끝낼 수 없다는 얘기다.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 인사에게 협상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악심(惡心)을 품은 듯 기업을 죽이려는 정부와 어떻게 얘기하겠습니까. 기업이 어떻게든 살도록 해줘야 하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역시 정부를 믿고 대화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서로 불신하는 상황은 현대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정부와 채권단 간에도 손발이 맞지 않는다.

그동안 금감위측은 "정주영 전명예회장 3부자 퇴진은 현대가 국민과 약속한 사안일 뿐 정부가 요구하는 사안은 아니다"며 3부자 퇴진에 대해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9일 저녁 현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김경림 행장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을 포함한 3부자퇴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안 수그러들던 3부자 퇴진을 갑자기 거론한 것이 김 행장의 의지였는지,아니면 청와대등 정책당국의 바람을 반영한 것인지 종잡기 어렵다는게 시장의 반응이다.

10일 다시 정부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정부가 3부자 퇴진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고 번복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3부자 퇴진까지 원하는지,문제경영인 퇴진이 목표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외환은행은 이날부터 현대측과 자구안을 놓고 직접 협상을 시작했다.양측이 상당한 교감을 이뤘다지만 성공여부를 점치기 힘들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대사태만 조기에 해결됐더라면 종합주가지수가 900은 넘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정부와 현대는 현대문제 해결의 지연으로 인해 전사회적으로 치르고 있는 비용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