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루카스.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20㎞ 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북위 15도의 열대지방.

하지만 해발 1천5백m의 고원도시여서 한국의 가을처럼 선선하고 공기도 맑다.

와이셔츠공장을 세워 몇달째 이곳에서 머물던 박학경 보우텍스 사장은 그날도 생산현장을 둘러본 뒤 사장실로 돌아와 자리에 막 앉으려던 참이었다.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낯선 사람이 들어섰다.

품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탄창이 장착된 기관단총이었다.

게릴라였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고생만 하다 죽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온몸이 얼어붙었다.

박 사장이 이곳에 공장을 세운 것은 지난 89년.

한국에서 와이셔츠를 구입해 미국으로 수출해오던 그는 쿼터 제한으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외국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과테말라는 쿼터제한이 없는데다 최대 시장인 미국이 가까웠다.

음식도 입에 맞았다.

주식인 팥을 비롯 닭볶음탕 감자 배추 마늘조차도.

과테말라시티에 숙소를 마련했지만 공장안 야전침대에서 주로 잤다.

너무 낙천적인 종업원들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그의 집념은 누구도 꺾지 못했다.

역발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종업원 3백명에 한국인 관리자는 기술자를 포함해 3명이면 족했다.

그런데도 무려 30명을 투입했다.

위험수당과 주거비를 포함한 한국인 1인당 급료가 이곳 종업원 1백명분에 달하는데도.

초기에 인력을 대거 투입해 제대로 가르치고 품질을 올리자는 계획이었다.

와이셔츠는 간단해 보이는 제품이지만 세부공정은 무려 60개에 달한다.

원단관리 검사 원단에 번호매기기 재단 박음질 단추달기 공정을 정성껏 지도했다.

어렵게 공장을 꾸려가는데 한국인 관리자 14명을 태운 밴이 고속으로 달리다 뒤집어지면서 여섯 바퀴나 구르는 사고가 생겼다.

정부군과 반군의 총격전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래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려니 했는데 사장실까지 반군이 들어오다니….

그의 요구는 기관단총을 사달라는 것.

요구를 안들어주면 총구가 불을 뿜을지도 모른다.

위기가 닥치자 기지가 떠올랐다.

일단 밖으로 나가 성능을 보자고 했다.

게릴라는 숲을 향해 드르르 갈겼다.

더이상 실탄이 없는 것을 확인한 박 사장은 공장경비를 위해선 1정으로 부족하니 10정 이상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순진한’게릴라가 그렇게 하겠다며 떠나자 경찰에 요청해 경비를 강화했다.

이후 그는 저격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코스와 시간대를 달리해가며 출·퇴근했다.

보우텍스의 과테말라 공장과 지난 93년에 세운 엘살바도르 공장에서 만드는 와이셔츠는 연간 1천2백만벌.

수출액은 1억달러에 이른다.

홍콩 TAL그룹에 이어 세계 두번째 규모.

이 회사의 중미 진출은 모험 없이는 성공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은 사례다.

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