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그때도 그랬지만…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월급쟁이에게는 변한 게 없어요”

황무석의 말에 김규정 계장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변한 게 없나요?”

김규정이 호기심을 보였다.

“대해실업의 주가관리는 제 소관입니다.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주가가 어느 정도 상승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큰 회사들도 다 하고 있지요. 개인이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면 저는 사표를 내야 할 처지입니다”

황무석이 자신있게 말했다.

김규정이 금세 안색을 바꾸며 긴장한 빛을 띠었다.

“그것은 증권감독원에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제 소관이 아니지요. 지금 말씀대로 나쁜 의도가 없었다면 문제되지 않겠지요”

김규정이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거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 다 하고 있는 일인데,공식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면 큰 범죄행위나 저지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게 바로 증권감독원의 행태이지요”

“황 부사장님,그 얘기는 그만하지요. 내일 아침에 증권감독원으로 모든 증거물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증권감독원에서 해결해보십시오. 저희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김규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할 수 없군요. 그렇게 하는 수밖에…. ”

황무석이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김 계장님,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여기고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한참만에 황무석이 숙인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무슨 부탁인데요?”

“여기에 오다 보니까 바로 밑에 포장마차가 있습디다. 그곳에서 내가 소주 한 잔 하는 동안 같이 있어줄 수 있습니까?”

“……”

“내일이면 실업자가 되는 신세라 집에 들어가기 전에 소주 한잔 걸치고 싶어요. 내 나이에 혼자 마시면 청승맞게 보일 것 같아서요”

황무석이 애원하듯 말하며 김규정에게 힐끔 시선을 보냈다.

김규정의 눈빛에는 다소 동정의 빛이 보이기는 했으나 아직도 의심의 눈빛이 섞여 있었다.

황무석은 후회하는 마음이 되었다.

물론 하청업체 사장이 준 티켓으로 맞춘 거지만 고급 양복을 걸친 게 후회스러웠고,일류호텔 이발소에서 5만원 주고 깎은 머리가 후회스러웠고,30만원짜리 영국제 신발을 신고 있는 게 후회스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모두 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 그는 노동자 시낭송회에서 권혁배 의원이 노동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연출했던 분장을 상기하고 있었다.

권 의원의 헝클어트린 머리,큰 사이즈의 싸구려 기성복,몇 달간을 닦지 않은 것 같은 신발,거기다가 문 아래가 벌겋게 녹이 슬어 너덜너덜한 차 등 그러한 것들이었다.

김규정의 동정심을 유발하기에는 자신의 분장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역시 교활한 정치가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요,뭐”

다행히 김규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