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하이테크업체인 NEC가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다시 세계 정상에 도전하고 있다.

NEC는 지난 5일 오는 2002년까지 IT기업 인수 및 출자에 총 6천억엔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장기 경영전략"을 발표했다.

지난 98년 거액의 적자에서 벗어난 NEC가 적극적인 M&A를 통해 세계 IT시장의 최고 권좌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NEC의 성공은 수완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니시가키 고지 사장의 어깨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NEC는 자회사 상장이나 자산매각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동시에 주로 주식교환 방식으로 M&A를 시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주식교환에는 NEC 본사와 그룹내 계열사의 미국증시 상장이 필요하다.

또 이번 중장기 경영계획 실현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M&A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봄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니시가키 사장은 한계사업에서 철수하는 등 잇단 구조조정을 단행, 99회계연도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당시 해외 애널리스트들은 "NEC가 기업인수에 적극 나서지 않을 경우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었다.

NEC의 세가지 핵심사업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세계 제2위의 반도체 사업은 D램에 집중돼 있고 휴대전화와 컴퓨터용 CPU를 중심으로 한 고부가가치 제품에서는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미국기업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IMT-2000용 전자부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장래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핵심인 시스템 LSI는 미국 TI가 약 70%를 장악하는 등 이미 뒤처진 감이 없지 않다.

컴퓨터 사업부는 올해 정보서비스.소프트웨어 사업의 매출을 지난해보다 50% 많은 1조엔으로 잡고 있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전자상거래 시스템 등을 해외에 판매할 방침이다.

그러나 구미(歐美)에서는 이제 겨우 판로를 정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NEC가 6천억엔이란 거액을 투입해 세계 제1위에 등극할 수 있는 제품은 이미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슈퍼컴퓨터 등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통신사업도 앞으로 주력할 차세대 네트워크 시스템분야에서 핀란드 노키아나 스웨덴 에릭슨 등 구미 대기업의 과점상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NEC의 든든한 수입원이었던 일본내 NTT관련 분야에서는 에릭슨을 비롯한 해외 대기업들이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핵심경영분야가 모두 장애물에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

따라서 니시가키 사장이 구상하고 있는 성장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M&A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NEC의 강력한 라이벌인 인텔은 99년 한햇동안 5천억엔 이상을 인수자금으로 사용했고 TI를 비롯한 다른 해외기업들도 2년전부터 M&A에 분주하다.

그러나 NEC가 "기업사냥"에 능숙하지 않다는게 문제다.

95년 여름부터 패커드벨에 1천5백억엔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은 청산하고 말았다.

게다가 올해는 출자하고 있던 미국의 유력 반도체 설계회사를 LSI로직에 뺏기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니시가키 사장이 독특한 수완을 발휘해 6천억엔을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사용한다면 세계 IT시장의 주역으로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적극적인 인수를 주저하거나 시간을 낭비해서는 세계적인 경쟁에서 탈락하고 틈새분야 혹은 일본이라는 시장에 머무르는 기업에 그치고 말 것이란게 일본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