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는 승자가 없다.

전화는 이긴자와 진자를 가리지않고 무차별로 닥친다.

전쟁의 참상앞에 무릎꿇은 사람들에게 "상처뿐인 영광"은 무의미하다.

멜 깁슨이 주연한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는 18세기 미국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역사를 빌린 틀과 장대한 스케일이 대하서사극인 듯 하지만 영화는 전설적인 전쟁영웅을 부각시키는 영웅담에 치중한다.

1770년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나는 내가 저지른 살육으로 언젠가 견디기 힘든 댓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예감에 늘 두려워했다"라는 주인공 벤자민 마틴(멜 깁슨)의 독백으로 극은 시작된다.

벤자민은 과거 영국과 프랑스간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늪속의 여우"로 불리던 최고의 전사.혼자서 수십명을 척살하고 적군의 배를 갈라 죽인후 혀와 손가락을 잘라 바구니에 담아 적진에 보내는 잔혹함으로 프랑스군과 인디언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 된다.

벤자민은 그러나 전쟁의 비참함에 진저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피로 물든 과거를 묻어둔채 아이들과 조용히 살아간다.

잠깐의 평화는 독립전쟁이 시작되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카메라는 무참히 참살당하는 군인과 민간인들을 비추며 전쟁의 참혹함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화면속의 잔인함은 그러나 "승자없는 전쟁"을 보여주는데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무엇이 살인을 정당화한다고 믿는가"라는 벤자민의 진지한 물음은 영화가 전쟁의 비극적 본질에 다가갈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가족들이 위기에 처해 "싸울 명분"을 확보한 그는 다시 "살아있는 전쟁병기"로 되돌아간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주인공의 고민은 결국 애국심이 최고라는 어줍잖은 결론으로 안착하고 만다.

볼이 발그레한 열여섯짜리 차남과 사랑하는 장남의 잇단 죽음과 말을 잃어버린 어린딸의 애처로운 모습은 눈물샘을 자극하긴 하지만 어딘지 불편하다.

"적"인 영국군에 대한 일방적인 비틀린 묘사도 거슬린다.

테빙턴 대령(제이슨 이삭)은 어린소년의 가슴에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교회에 마을 사람들을 산채로 몰아넣고 아무렇지도 않게 불을 지르는 냉혈한이다.

콘 월리스 장군(톰 윌킨슨)은 난리통에도 옷차림에나 신경쓰는 허영기로 전투를 그르친다.

꺾일 줄 모르는 미국주의의 기운은 여전히 영화 구석구석에 깊숙히 드리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여름철 오락물로 손색없다.

우선 멜 깁슨의 카리스마가 관객을 압도한다.

사랑과 애정,분노와 슬픔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푸른 눈동자는 보는 이를 강하게 빨아들인다.

"라스트 모히칸"과 "브레이브 하트"를 빼닮은 장면장면도 인상적이다.

멜깁슨은 이 영화로 할리우드 사상 최고 개런티인 2천5백만달러를 받았다.

너른 들판에서 벌어지는 미국군과 영국군의 전면전도 볼만하다.

줄을 맞춰 전진하던 군인들이 육탄으로 맞붙어 사투를 벌이는 전투장면은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인디펜던스 데이""고질라""스타게이트"를 만들었던 롤랜드 에머리히가 메가폰을 잡았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로버트 로댓이 시나리오를 맡았다.

22일 개봉.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