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이인환 교수를 만나실 거지요?"

탕 밖으로 나와 스툴에 앉아 있는 진성호 옆에 앉으면서 황무석이 물었다.

진성호는 황무석이 갑자기 이정숙의 아버지며 자신의 장인인 이인환 교수를 언급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저녁 9시경 병원에 들르겠다고 공항에서 전화했어요. 병원으로 오겠지요"

황무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요?"

진성호가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황무석이 입을 열었다.

"수사기관에 있는 친구를 통해 알아보았는데요...이인환 교수가 녹음테이프를 이 사건 수사팀에 제출했대요"

진성호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테이프인데요?"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테이프라고 하던데요"

"이인환 교수가 준 테이프가요?"

진성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득 미국 출장 전 아내가 전화로 무리한 위자료 요구를 하는 바람에 화가 나 죽이겠다고 소리쳤을 때 아내가 한 말이 상기되었다.

"내가 죽으면 녹음테이프를 아버지가 법정에 가지고 갈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진성호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젖혔다.

"수사기관에서는 내가 아내를 죽이려 했다고 의심하는 겁니까?"

여전히 웃음의 자락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진성호가 말했다.

"그게 아니고요. 다른 정보가 있어서..."

황무석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무슨 정보 말이에요?"

진성호가 이제는 짜증을 내며 물었다.

"주가조작에 관한 정보가 있다고 해서요"

"뭐요?"

진성호는 앉은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것은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수사기관에서 그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이인환 교수로부터 입수했다면 이미 대해실업의 주가조작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었고 어쩌면 그 정보를 증권감독원에 이미 통보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그러한 일이 실제 발생했고 언론기관에도 정보가 흘러갔다면 일간지간의 보도경쟁으로 인해 사태가 바로 잡을 수 없을 만큼 이미 그르쳐졌으리라는 불안감이 진성호를 휩쌌다.

진성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일 조간신문에 기사화된다면 회사가 입는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도 지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해외의 자금차입은 불가능해지고 국내 금융기관의 차입금 상환요구도 감당하기 힘들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한마디로 대해실업의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황무석이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여유 있게 말했다.

진성호는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황 부사장,회사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것을 모르세요?"

진성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건 내 문제만이 아니에요. 황 부사장에게도 해당된 문제예요.
회사가 금융시장에서 신용이 추락하면 앞으로 자금조달이 불가능해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