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석유시장의 불안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총회가 최근 하루 70만배럴의 증산을 결의했음에도 국제유가의 상승 추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국제 유가는 지난 18개월 동안 무려 3배 가까이 올랐다.

유가와 연동성이 큰 천연가스 역시 비슷한 상승 패턴을 보이고 있다.

비철금속 등 천연자원 가격도 지난 10년래 최고 수준에 달하는 불안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과거 석유파동의 악몽이 되풀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의 자원시장 불안을 "에너지시장 문제로 국한"하는 시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대책은 국내유가의 대폭적 인상으로 소비감축을 유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석유를 포함한 자원(원자재)투입구조의 적정화와 소비자효용의 극대화를 위한 심각한 고민은 보기 어렵다.

더구나 단편적으로 알려진 유가 조정계획은 세수 증대에만 목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소비 감축이나 에너지소비 구조의 적정화를 위한 논리가 빈약한 탓에 국민복지향상에는 등한한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첫째 가격상승은 소비 감축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

석유는 가격 탄력성이 매우 낮은 필수재이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소비 조정보다 소비자의 효용축소로 귀결된다.

따라서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유가를 인상하는 것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둘째 소비자 보호시책이 미흡하다.

국제유가의 상승이 국내 유가 인상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해외 거대 석유회사들이 원유 생산부문에서의 이윤으로 정유부문의 경쟁이 가능한 반면 국내 정유사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내 유전이 없는데다 해외투자 또한 부진해 원유생산 부문이 거의 없는 탓이다.

셋째 유가인상이 세수 증대로만 귀결되고 에너지 부문의 구조개혁과 같은 장기 비전과는 연계되어 있지 않다.

우리 석유제품 가격구조는 세금의 비중이 어느 상품보다 높고 제품별 가격차가 크다.

휘발유가격의 75%가 세금이다.

유가 인상은 세수증대로 직결돼 정부가 유일한 수혜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지속된다.

금융개혁에 비견할 만한 정유산업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그 소요재원은 늘어나는 석유류 세금을 활용해야 한다.

넷째 석유제품 가격의 구조조정 원칙과 방법론에 대한 신뢰가 미흡하다.

정부는 제품간 가격격차를 OECD국가 평균수준으로 조정하는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유와 LPG가격은 현재의 두배 이상 오르게 된다.

버스요금 인상 등 부정적 요인을 감수하더라도 공해유발 방지,석유제품 소비 구조조정 등 여러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늘어난 세수를 어디에 쓸지는 불분명하다.

적어도 가격 격차 축소에 따른 서민의 손실보전 대책과 장기적으로 해외 인상요인을 경감할 수 있는 대책만이라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세수와는 별개의 독자적 에너지정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유가인상이 미칠 원자재가격 상승효과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유가상승은 경제의 모든 부문에 누적 승수효과를 유발한다.

그러므로 국제 자원시장이 불안한 지금같은 때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수입 천연자원을 기초로 하는 국내 부품.소재 등 원자재 생산업의 육성없이는 국제수지 방어와 국제경쟁력 확보가 힘들다"는 정부발표와 현행 유가인상 시책은 논리가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석유정책을 거시적 자원정책의 하나로 파악해야 한다.

결국 유가인상과 관련한 복잡하고 상호 모순된 여러 요인들을 보다 원칙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리해야 한다.

에너지가 천연자원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두어 정책을 보완하고 관련 산업의 개혁을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에너지로부터 늘어나는 세수를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에 우선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국제 석유시장의 불안이 국내 자원파동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최소한 경쟁국보다 그 파급효과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고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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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서울대 공과대 자원공학과
<>프랑스 Grenoble대학원.에너지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