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권혁배는 투쟁생활로 일관하다 고인이 된 시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김남주 시인의 "마수"를 팸플릿에 게재하자는 최형식의 의견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형식과 같이 순진한 이상주의자는 모르는 것이 있었다.

한국 정치 현실에서 정치가로 살아남으려면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것인데,그것은 한쪽은 무산대중을 위한 성난 얼굴이고 다른 한쪽은 가진 자를 향한 미소짓는 얼굴이어야 한다.

그 사실을 최형식은 몰랐다.

그리고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철저히 이중 성격을 유지해 무산대중을 대할 때는 이상주의자의 성격을 보이지만 다음 순간 있는 자를 대할 때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변모해야 한다는 사실도 그는 몰랐다.

이중 성격을 가진 인간들인 그들 정치인들이 낮과 밤을 기준으로 하여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되고,말하는 상대의 숫자에 따라 상대가 많으면 이상주의자 내지 도덕군자가 되고 적으면 현실주의자 내지 타협을 받아들이는 자로 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최형식으로서는 알 길이 없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많은 숫자는 표를 의미하고 적은 숫자는 돈을 의미하는데,정치판에서 성공하려면 두 가지가 모두 필수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형식과 같이 순진한 무리들 속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이중 성격이 정치판에서 간신히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요소라면 다중성격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배우의 필수요건일 뿐만 아니라 정치판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사실..그래서 성공한 정치가는 훌륭한 배우여야 하며,훌륭한 배우란 관중의 박수를 받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최형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백인홍이 방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권혁배는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백인홍이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최형식을 중역으로 채용하는 것이었다.

"아까 노사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중역이 필요하다고 했지? 좋은 사람이 생각났어" 권혁배가 말했다.

"그게 누구야?"

"최형식이라고,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우리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사람이야"

"배경이 어떤 사람이야?"

"현재 나이는 46세이고,원래 부농 선비 집안 출신이야.아버지는 고향에서 일본대학으로 유학한 유일한 사람이었대"

권혁배는 최형식의 배경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대로 이야기해주었다.

"한 가지 꺼림칙한 점이 있어" 백인홍이 말을 이어갔다.

"이데올로기에 한때라도 빠졌던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자기 속셈을 보이지 않는 데 훈련되어 있다는 거야.그래서 겉보기에는 필요 이상으로 겸손하고 착실해 보이나 자기 속셈을 오랫동안 털어놓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 성격파탄이 되어 있는 사람이 많아.기회를 만나면 인간성이 돌변하며 증오심이 폭발하게 되어 있어"

"최형식은 일체 증오심이 없는 사람이야.그건 내가 보장하지"

"그럼,나한테 보내봐.내가 보고 결정할게"

백인홍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