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권혁배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문을 열었다.

"도만용이라는 자를 알지?"

백인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작년에 우리 셋이서 골프도 한번 했지.

지금은 관직에서 물러나 제3당에 들어가 있어.

그자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워낙 통이 커서 문제지만 금융계에서는 그자가 해결 못하는 일이면 아무도 못할 거야.

그자가 관직에 있을 때 그자 돈을 얻어쓰지 않은 국회의원은 졸때기 의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을 정도니까.

내가 전화해줄게"

"고마워,그럼 바로 좀 그렇게 해줘"

"그런데 대해직물 노조는 백 사장이 인수하는 데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까?

나는 그 점이 우려되는데"

"그것도 문제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단순히 퇴직금 액수나 고용승계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기회에 한번 문제를 만들어보자는 세력도 있을 것 같아.

원만히 해결할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 권 의원이 명색이 사회노동문제 연구소 소장 아니야"

두 사람이 똑같이 웃었다.

"생각해볼게.

노조를 설득할 중역이 필요할 거야.

노조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중역 말이지.

그런 중역이 회사경영진에 있어야지만 외부세력의 개입을 막을 수 있어"

권혁배가 말했다.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어?"

"생각해볼게"

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웨이트리스가 리모트폰을 가지고 들어왔다.

"권 의원님 전화예요"

웨이트리스가 말하며 리모트폰을 권혁배에게 건네주었다.

백인홍이 화장실에 간다고 손짓으로 알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여보세요"

"소장님,저 최형식입니다.

지금 통화할 수 있을는지요?"

"괜찮아요,얘기해요"

"소장님이 말씀하신 박노해의 시 "진노동자"를 읽어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시보단 김남주 시인의 "마수"를 팸플릿에 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요?"

"소장님이 시 낭송회에서 직접 낭송하신 시를 싣는 것이 좋을 것같아서요.

그리고 박노해 시인의 시는 노동자를 선동하는 내용이고 김남주 시인의 시는 가진 자를 공격하는 내용의 시로 현재 문학평론가들도 김남주의 시를 높이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김남주 시인은 오랜 감옥생활로 병고에 시달리다가 지금 고인이 되었으므로 고인의 시창작 활동을 기리는 의미에서도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최형식의 긴 설명에 권혁배는 짜증이 났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상류층을 너무 자극할 입장이 아니에요"

권혁배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습니다.

소장님 지시에 따르도록 하지요"

권혁배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권혁배로서는 최형식의 고집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