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끔찍한 존속 살인사건 하나가 온나라를 전율케 했다.

자식 키워봐야 헛거라는 탄식을 뱉어내는 부모들이 있었고 도대체 어떻게 키웠길래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과천 부부 살해사건의 범인은 명문대 휴학생인 둘째 아들로 밝혀졌는데 그 비정한 아들은 경찰조사에서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때문에 일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잠바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푹 숙이며 그가 한말 "등록금도 안주고요,밥도 따로 먹을 정도로 외토리로 만들었어요"

필자는 지난달 25일 아침 이 기사를 직접 뉴스로 전하면서 처음엔 헤드라인 부분만 보았다.

"이런 나쁜!"

잔혹한 살인 방법과 사체 처리 과정만 보더라도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비정한 불효자의 전형으로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곧장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밥상도 따로 차릴 정도의 무관심과 정신적 학대 때문이라는 그의 얘기가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사자는 말이 없으므로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이 고백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 확인할 바는 없지만 왜 그 아들이 이렇게 까지 가정 안에서 고립감을 느끼고 그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부모를 죽여야 했는지 그 비극의 단초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멀쩡한,아니 남부럽기까지 한 조건인 대학생이라는 사회적인 기득권을 갖고 있으면서 왜 그런 극단적인 일을 저질러야 했을까.

아무리 술김이었다고는 하나 어떤 뿌리깊은 갈등이었길래,어떤 괴로움이었길래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속사정이 궁금해서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해봤다.

취재 기자는 다시 과천 경찰서 형사계 담당반장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수사하면서 느낀 그의 소감 첫 마디는 "모래알"이라는 단어였다.

아들에 의해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을 욕되게 할 생각은 없지만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 가족은 가족이라는 공감대나 울타리 의식없이 각자가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섬 같은 존재였던 듯 하다.

그 단적인 예로 범인이 21일 새벽 5시에 어머니를 살해한 후 4시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다시 아버지에게 갔다고 한다.

그 시간동안 모자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아버지는 몰랐다는 얘기다.

그 4시간동안 아들은 자기 방에 와서 가만히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학교 다니던 시절,형에게는 도시락을 날라다 주면서 자신의 도시락은 싸주지 않아 상처받았던 기억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군대 3년동안 면회소를 기웃기웃하며 행여나 하고 기다렸던 일을 떠올렸을까.

그래도 더 어려서 있었던 즐거웠던 기억을 상기하며 눈물을 훔쳤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줄곧 이 대목에 대한 진술을 하면서 "내가 미쳤나봐요,있을 수도 없는 짓을 했어요"라며 머리를 움켜쥐고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본 한 관계자는 형사 생활 수 십년 하면서도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부모 자식간의 인연이라고 다 좋은 인연은 아닌가봐요. 전생에 못 푼 한을 이승에서 풀려다 그렇게 됐다고 밖에는 안보이네요"라며 뜻 모를 한숨을 쉬었다.

그는 범인 은석이를 앞에 두고 조서를 다 써가던 중 경찰서 창문으로 날아든 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였을까요" 라고 되묻지는 못했다.

필자는 요즘 아침 6시 뉴스를 진행하느라 새벽 3시 반에 집을 나선다.

그래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못보고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직장 다니는 엄마로서의 죄책감 때문에 가정에서의 주부,엄마 역할 같은 류의 화제가 나올라치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스타크래프트한다고 남편과 아이가 낄낄거리며 붙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슬그머니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극복책으로 퇴근할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피카추나 도넛 같은 물량 공세에 신경을 쓰다가 "이거 웬 유치한 쟁탈전"하며 혼자 픽 웃게 된다.

아마도 내 경우 6살 난 아들을 포함한 내 가정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소속감의 욕구가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이 주는 행복,가정이 주는 위안에 대해 새삼 말해 무엇하리요마는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제아무리 바쁘다고 동동거리며 뛰어다녀도 뉘엿뉘엿 해질녘에 찾아드는 허무함과 외로움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 빈 마음을 보듬어주고 꽉 채워줘야 할 사람들이 바로 가족일 텐데 불행하게도 의외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모래알 가족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인간은 북적대는 가족으로부터 멀어져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가족과 함께 뒤엉키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싶어하는 모순된 욕구도 강하게 갖고 있다.

왜냐하면 가족으로부터 받는 기쁨과 정신적인 소속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아주 특별한 위안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가정 안에서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며칠 째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화두이다.

가족은 가깝지만 자칫 멀어질 수도 있는 사이,가깝기 때문에 더 존중해야 하는 사이인 것이다.

그리고 가족은 더 이상 서로에게 섬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광고 카피처럼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 여야지 어려울 때 짐(?)이 되는 존재가 되서는 안되겠다.

천근만근 삶의 무게가 어깨를 찍어누를 때 돌아가서 쉴 수 있는 유일한 둥지는 역시 가족일 테니까 말이다.

이번 주말은 가족끼리 함께 지내며 서로의 사랑스러운 점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오랜 세월 부대끼면서 서로의 못난 부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결점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과 관용을 연습해 보면 어떨까.

ksj@ 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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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

<>이화여대 신방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