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MF(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에 접어든이후 사전에 충분한 경영수업을 받지 않고 경영바통을 이어받은 2세 오너들이 줄줄이 스러져갔다.

지난 1일 워크아웃을 얻어내기위해 살던 집까지 팔아 회사에 출연하기로 하고 경영권에서 손을 땐 이재관 새한 부회장도 전형적인 케이스다.

"경영을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관건일뿐이지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난센스"라고 보는 친기업적인 학자들도 "실전경험을 제대로 쌓지않고 경영권을 단숨에 승계시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게됐다"고 지적한다.

시장은 더 이상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못한 오너 2세의 경영권 승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마쓰시타전기도 지난 4월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손자(마사유키 부사장) 대신 나카무로 구니오 전무를 최고경영자에 발탁했다.

경영권 세습에 대한 사내외의 비판을 받아 들인 조치였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박사는 "최고경영자의 자질이 경영시스템의 효율성을 좌우하는 만큼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능력있는 사람을 발탁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능력있는 사람을 발탁하고 경영 성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지배구조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얘기다.

유승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도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이라며 "투명한 경영으로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경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오너 경영인중에 탁월한 전문적인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예외없이 경영수업을 제대로 밟은 이들이다.

구본무 LG 회장은 지난 75년 LG화학 심사과장을 시작으로 20년동안 탄탄한 경영 수업을 받은 후 95년 2월 회장직을 맡았다.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38) 동원증권 부사장은 고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해 한동안 원양어선을 타고 참지 냉동작업을 했다.

이후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91년) 기획실 과장(93년) 뉴욕사무소 차장(94년) 이사(97년) 상무(98년) 전무(99년)를 거쳐 지난 4월 부사장직을 맡게 됐다.

초고속 승진이지만 12년동안 착실히 경영수업을 닦은 것이다.

김 회장의 차남인 남정씨도 현재 동원산업 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동국제강 장세주 사장도 지난 78년 동국제강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20년이상 다양한 현장경험을 쌓은 후 작년 12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장 사장은 경영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고 장상태 회장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는듯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최근들어 경영권 승계를 아직 받지않은 2세 오너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e비즈를 도맡아 하는 추세가 나타나고있는 것도 경영능력을 검증받으려는 시도로 봐야한다.

최태원 SK(주) 회장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그룹 경영 전반에 간섭하기 보다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e커머스쪽에 경영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재용씨 역시 e비즈니스 사업을 통해 경영자질을 검증받길 원하고 있다.

현재 미국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박사과정에서 e커머스를 전공하고 있는 재용씨는 최근 삼성의 인터넷 지주회사인 e삼성의 대주주로 나서는 등 열정을 보이고 있다.

e삼성은 일본 싱가포르 중국 등지에 인터넷 전문사 설립,아시아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아직 경영권 승계를 얘기할 상황이 아니다"며 "앞으로 재용씨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오너들도 "시장의 검증을 받아야 대권승계가 가능하다"는 시대흐름을 읽고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재계는 시장에는 승복하겠지만 정부가 인기주의나 여론몰이식 인적 청산으로 오너는 물러가야한다는 식으로 "기업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오히려 기업과 시장에 충격을 준다고 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 상무는 "포스트 오너체제가 다양하게 나타나 서로 경쟁하게 되면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인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경영자모델이 정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익원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