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어느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에서 발생한 사고는 많은 부모들과 아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필이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들어 있는 5월중에 일어났던 일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열살 짜리 두 어린이가 놀이터의 등나무에 올라가 놀다 등나무 줄기가 감고 있던 벽돌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다른 한 명은 큰 부상을 입었던 사고였다.

졸지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3m 높이의 벽돌기둥이 그처럼 허술하게 지어지고 관리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초가 없는 나라"라고 탄식하고 있었다.

작년 씨랜드 참사 때 역시 아들을 잃고 실망해서 훈장까지 반납하고 이민을 떠난 어느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 사회를 깊이 들여다 보면 기초가 전혀 없다고 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극히 부실한 부문이 적지 않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는 것같다.

금융시장이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제2의 경제위기론이 나돌게 되자 정부에서는 우리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튼튼하므로 위기의 재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정부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나 그 주장이 기대한 만큼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먼저 3년전에도 정책당국이 이런 말을 하면서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무시했지만 결국은 위기상황이 발생했었다는 사실을 아직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과거 미국에서도 가끔 나타났던 일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미국을 엄습하기 직전에도 미국의 재무장관은 국민들에게 미국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외치고 다닌 기록이 있다.

또 한가지 이유는 정부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제의 기초여건도 꼼꼼히 따져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정부가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성장률 지표만 해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금년 1.4분기의 성장률이 12.8%로 추정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우리의 교역조건이 워낙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어서 이것을 감안한 성장률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수입단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하여 금년 1.4분기 중의 교역조건은 작년 동기에 비해 15.7%나 악화되었다.

1,2차 석유파동때 만큼이나 악화되었다는 얘기다.

교역조건이 나빠지면 아무리 열심히 공장을 돌리고 생산을 늘려도 필요한 수입품을 그전 만큼 사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므로,"구매력으로 조정한 소득(GNI)"의 성장률은 "생산물량으로만 파악한 소득(GDP)"의 성장률 보다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구매력으로 조정한 1.4분기의 소득은 7%내외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성장률의 괴리는 외환위기 직전에도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정부당국은 생산측면의 성장률만 믿고 정책방향을 정했다가 위기대응에 있어 실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하반기 이후에는 생산면의 성장률도 점차 떨어져 갈 것이어서 교역조건이 개선되지 못한다면 구매력으로 본 성장률이 크게 하락할 위험이 있다.

우리경제의 기초를 판정함에 있어서 또한가지 중요한 지표가 무역수지이다.

IMF체제를 졸업했다는 찬사를 듣자마자 우리의 무역흑자는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다.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지 1년 정도인데 이 모양이라면 내년에는 적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하겠다.

만성적자체질이 고쳐지지 않고 되살아 난다는 것은 우리 경제기초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실물경제에 못지않게 금융면의 기초 또한 부실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위기 의식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엄청난 부실자산과 금융기관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 때문에 국민들은 금융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다.

신뢰를 잃은 금융기관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인데도 공적 자금을 부어 연명시키려고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금융기관 스스로가 기초적인 체질개선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물대신 공적자금만 빨아먹는 하마로 남게될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할 일이라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우리경제의 기초적 취약점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몇가지 지표에만 만족해서 위기론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만 위기론에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임기응변의 대증요법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저께 정부가 증시부양책을 내어놓았어도 시장의 반응이 냉담했다는 사실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론에 의해 결정된 정책을 흔들림없이 밀고 나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위기론을 해소해 주는 바른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