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세제실이 과세자료제출법 시행령 때문에 곤란한 지경이 됐다.

재경부가 과세활동의 기본정보가 될 만한 자료를 국세청에 통보토록 과세자료제출법 시행령 제정안을 지난달 24일 입법예고한데 대해 최근 외교통상부와 산업자원부가 발목을 붙잡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제정안에는 의무통보할 자료의 명세가 일일이 열거돼 있다.

2천4백cc 이상 승용차 소유자의 명단이 문제가 됐다.

먼저 수입차 업계가 "시비"를 걸고 나섰다.

한국차는 2천4백cc 이상이 10% 내외에 불과하지만 수입차는 90% 이상이라면서 이는 비관세장벽이라는 주장이다.

외교통상부가 이런 주장을 거들며 재경부를 뜯어말리고 있다.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미통상장관 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갔다가 지난 14일 귀국한 김영호 산업자원부 장관은 현지에서 재경부와 협의도 거치지 않은채 그 조항을 빼겠다고 말해 재경부의 반발을 샀다.

통상마찰을 최소화해야 하는 외교부와 산자부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과세권은 정권존립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점을 두 부처 장관들은 인식했으면 한다.

과세권은 대외적으로 주권과 같은 반열에 들어갈 정도로 신성시되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는 수입차 업계나 외국 정부의 항의에 대해 과세자료 수집을 위한 조치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주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성급히 철회 운운하는 것은 자국의 권리를 너무 쉽게 던져버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수입차 업계나 미국이 우리나라의 과세와 관련한 입법에 대해 철회를 요구하는 건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면서 "정부 부처와 장관이 내정간섭을 후원하는 것이 지금의 형국"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국세청 등 세정당국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왜 이같은 "소동"이 일어났는지 따져보면 국세청 과세활동의 순수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이 국세청을 "협박"과 "보복"의 수단으로 남용해 온 결과다.

최근에도 정부의 물가안정시책에 "서비스 요금을 올리는 이.미용원 학원 등에는 세무조사와 위생검사를 의뢰하겠다"는 웃지못할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정부가 이런 식으로 국세청 조사활동의 순수성을 스스로 해칠 경우 이번과 같은 소동은 재연될 수밖에 없다.

< 김인식 기자 sskiss@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