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상화

요약한 설명자료가 이현세에 의해 세 사람의 투자담당자들에게 주어졌고 진성호는 자료 설명에 들어갔다.

그 순간부터 진성호는 회의실 분위기를 압도했다.

회사의 재정상태를 설명할 때도 막힘이 없었고 회사의 장래 계획을 설명할 때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유머감각을 발휘하며 진성호는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듯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국의 기업총수는 나이가 들어야 된다고 하던데 진 회장은 젊은 편이라 경영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까?" 설명이 끝날 무렵 제일 편안한 인상의 투자담당자가 미소 띈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40대에 대통령이 된 클린턴이 세계를 훌륭하게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대해실업을 경영하는 데 37세 이상의 나이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성호의 말에 투자담당자들이 미소를 지었다.

진성호가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기업 총수가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며 거기에 비하면 제가 젊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경험만을 의미할까요? 부패한 관리와 타협해야만 했던 경험과 투명성이 결여된 가족 경영체제가 어떻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국경이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미국.한국.일본이 아닌,뉴욕.서울.동경이 있을 뿐입니다.

이제 그것도 희미해집니다.

앞으로는 IBM.삼성.미쯔비시가 있을 뿐입니다.

이런 시기에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사고방식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경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진성호의 달변은 미국 유학시절 연마한 유창한 영어실력과 함께 그곳에 있는 투자담당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듯했다.

회사채 소화는 문제가 없을 듯해 이현세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이현세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동남아 지역의 국가가 당면하고 있는 외환위기 문제를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아서였다.

"부채비율이 3백%가 넘어 아주 높은 편인데 금융이자 부담이 너무 크지 않나요?" 날카로운 눈매의 투자담당자가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은 짧은 자본주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아직 자본시장이 산업을 떠받칠 만큼 육성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국민소득 만 달러 선이었을 때 일본 기업도 비슷한 경우였습니다" 그 다음에 투자담당자들은 대해실업의 경영실적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진성호는 별 무리 없이 답변을 해냈다.

"여기 자산목록을 보니까 대표이사 앞으로 약 2백만 달러 이상 가불이 있던데..진성호 회장이 회사로부터 돈을 빌렸습니까? 빌렸다면 개인적인 돈이 필요해서였던가요?" 날카로운 눈매의 투자담당자가 물었다.

"저는 회사에서 돈을 빌릴 필요가 없을 만큼 개인 재산도 있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명시된 가불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부득이하게 필요한 비자금입니다.

일단 제 앞으로 가불 표시함으로써만 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부정행위가 사내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 진성호의 솔직한 답변이 오히려 투자담당자들의 신뢰를 끌어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