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어느 경제학자의 선물..김병종 <서울대 교수/미대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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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 한 경제학자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서울대 송병락 부총장으로부터 였는데 여러 분야의 비교적 젊은 교수 몇이 점심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그 분은 초대한 교수들에게 책을 두 권씩 선물했다.
한 권은 성서의 시편과 잠언만을 골라 뽑은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50만권 이상이 팔렸다는 광고 문구가 새겨진 영문 책으로 그 책 이름은 낫싱 북 (The Nothing Book) 이었다.
기대감 속에 그 책을 열어 본 사람들이 모두 빙그레 웃었다.
그야말로 그 책은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빈 책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넘겨도 계속 백지뿐이었다.
연구실 책상에 그 책을 두고 가끔씩 펼쳐보면서 무언의 교훈을 얻곤 한다.
글 많고 말 많은 이 세상에 단 한 줄의 글도 실려있지 않은 그 책은 내게 여백의 삶에 대해 일깨워 주곤 한다.
대학의 부총장 자리는 너무도 어렵고 복잡한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이 다른 교수들을 위해 시간을 내 책 선물을 준비한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송 부총장은 나라가 자랑할 만한 경제학자다.
그 분이 하버드에서 강의할 때에는 학생들의 인기투표에 의해 그 해의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파악하기에 그 분의 덕목은 뛰어난 저술이나 학자로서의 업적보다도 따뜻하고 훈훈한 가슴을 가졌다는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경제학자하고 따뜻한 가슴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학은 물론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막론하고 소위 세상을 이끌고 가는 힘있는 분야마다 이 따뜻함의 덕목은 제 1요소로 꼽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간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과 탁월한 식견,그리고 혁명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보았다.
그 중에는 참으로 탄복할 만한 재능이나 학식에 강한 추진력까지 갖추고 있어 그 사람이 뛰어들면 금방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질 것 같은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탁월한 식견이나 재능의 소유자들에게서 가끔씩 느껴지는 것은 세상과 사물을 보는 따뜻한 시각이 결핍돼 있다는 점이다.
타협 없는 원칙 속에 사는 사람들 속에서 의외로 이러한 덕목이 결핍돼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해진다.
그리고 나면 아무리 목청이 크고 구호가 현란해도 그들의 주의 주장에 신뢰가 잘 가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래 실로 전 분야 전 영역에 걸쳐 수많은 사회 제도와 정치 경제적 주의 주장들이 있어왔다.
그 수많은 제도와 주의 주장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향한 보다 많은 사랑,보다 많은 따뜻함을 함유하고 있는 제도나 주의 주장들이 그래도 생명력이 길고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따뜻한 정치학,따뜻한 경제학,따뜻한 사회학이야말로 절실하게 챙기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이 따뜻한 정치학,따뜻한 경제학,따뜻한 사회학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따뜻한 정치학자,따뜻한 경제학자,따뜻한 사회학자에 의해 이룩되어진다.
송 부총장은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 분의 경제학 책 중에는 중학생인 필자의 아들도 탐독할 만큼 재미있는 책도 있다.
예컨대 몸에 좋은 쓴 약에 당의정을 입혀 먹기 쉽게 하듯이 재미있게 읽다 보면 이해하고 경제학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분의 모든 책이 쉽지만은 않다.
어떤 책은 난해하고 딱딱하고 근엄하다.
그 분의 책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세상과 사람과 경제학을 보는 따스한 시선이다.
특히 상처 나고 곪아 터진 한국 경제학을 사랑으로 싸매고 치료하려는 대목들에서는 많은 감동을 준다.
필자 같은 문외한에게도 경제라는 것이 아주 크고 부드러운,그러면서도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어떤 생물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는 한 겨울을 지나고 나면 수 십년씩 자란 낙락장송들이 부러져 있곤 한다고 했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지만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그 큰 몸체들이 부러지곤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어떠한 강한 완력도 무릎을 꿇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결국엔 이런 부드러움과 따뜻함인 것이다.
원로 경제학자 한분으로부터 받은 따뜻하면서도 유머스러운,그러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선물로 받고 나서 요즘 나는 유쾌한 나날이다.
kimbyu@snu.ac.kr
서울대 송병락 부총장으로부터 였는데 여러 분야의 비교적 젊은 교수 몇이 점심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그 분은 초대한 교수들에게 책을 두 권씩 선물했다.
한 권은 성서의 시편과 잠언만을 골라 뽑은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50만권 이상이 팔렸다는 광고 문구가 새겨진 영문 책으로 그 책 이름은 낫싱 북 (The Nothing Book) 이었다.
기대감 속에 그 책을 열어 본 사람들이 모두 빙그레 웃었다.
그야말로 그 책은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빈 책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넘겨도 계속 백지뿐이었다.
연구실 책상에 그 책을 두고 가끔씩 펼쳐보면서 무언의 교훈을 얻곤 한다.
글 많고 말 많은 이 세상에 단 한 줄의 글도 실려있지 않은 그 책은 내게 여백의 삶에 대해 일깨워 주곤 한다.
대학의 부총장 자리는 너무도 어렵고 복잡한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이 다른 교수들을 위해 시간을 내 책 선물을 준비한 그 분의 따뜻한 마음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송 부총장은 나라가 자랑할 만한 경제학자다.
그 분이 하버드에서 강의할 때에는 학생들의 인기투표에 의해 그 해의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파악하기에 그 분의 덕목은 뛰어난 저술이나 학자로서의 업적보다도 따뜻하고 훈훈한 가슴을 가졌다는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경제학자하고 따뜻한 가슴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경제학은 물론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막론하고 소위 세상을 이끌고 가는 힘있는 분야마다 이 따뜻함의 덕목은 제 1요소로 꼽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그간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과 탁월한 식견,그리고 혁명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나보았다.
그 중에는 참으로 탄복할 만한 재능이나 학식에 강한 추진력까지 갖추고 있어 그 사람이 뛰어들면 금방 세상이 좋아지고 달라질 것 같은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탁월한 식견이나 재능의 소유자들에게서 가끔씩 느껴지는 것은 세상과 사물을 보는 따뜻한 시각이 결핍돼 있다는 점이다.
타협 없는 원칙 속에 사는 사람들 속에서 의외로 이러한 덕목이 결핍돼 있음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해진다.
그리고 나면 아무리 목청이 크고 구호가 현란해도 그들의 주의 주장에 신뢰가 잘 가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래 실로 전 분야 전 영역에 걸쳐 수많은 사회 제도와 정치 경제적 주의 주장들이 있어왔다.
그 수많은 제도와 주의 주장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향한 보다 많은 사랑,보다 많은 따뜻함을 함유하고 있는 제도나 주의 주장들이 그래도 생명력이 길고 가치 있는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따뜻한 정치학,따뜻한 경제학,따뜻한 사회학이야말로 절실하게 챙기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이 따뜻한 정치학,따뜻한 경제학,따뜻한 사회학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따뜻한 정치학자,따뜻한 경제학자,따뜻한 사회학자에 의해 이룩되어진다.
송 부총장은 많은 저서를 가지고 있는 경제학자다.
그 분의 경제학 책 중에는 중학생인 필자의 아들도 탐독할 만큼 재미있는 책도 있다.
예컨대 몸에 좋은 쓴 약에 당의정을 입혀 먹기 쉽게 하듯이 재미있게 읽다 보면 이해하고 경제학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분의 모든 책이 쉽지만은 않다.
어떤 책은 난해하고 딱딱하고 근엄하다.
그 분의 책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세상과 사람과 경제학을 보는 따스한 시선이다.
특히 상처 나고 곪아 터진 한국 경제학을 사랑으로 싸매고 치료하려는 대목들에서는 많은 감동을 준다.
필자 같은 문외한에게도 경제라는 것이 아주 크고 부드러운,그러면서도 섬세하게 다루어야 할 어떤 생물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는 한 겨울을 지나고 나면 수 십년씩 자란 낙락장송들이 부러져 있곤 한다고 했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지만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그 큰 몸체들이 부러지곤 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움과 따뜻함은 어떠한 강한 완력도 무릎을 꿇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결국엔 이런 부드러움과 따뜻함인 것이다.
원로 경제학자 한분으로부터 받은 따뜻하면서도 유머스러운,그러면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선물로 받고 나서 요즘 나는 유쾌한 나날이다.
kimbyu@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