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전문위원>

지식과 두뇌력이 21세기 생존과 번영의 열쇠라는 인식 속에서 세계 각국의 두뇌인력 유치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미국 등이 외국 국적의 첨단기술인력을 유치하고자 이민법과 각종 사회제도 개혁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한국 정부도 지난주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11일 첨단기술을 보유한 외국기업과 연구기관을 한국에 적극 유치키로 하고 연구소 설립 및 임대료 감면 외국인 과학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 비자발급기간 연장 국가연구개발사업 발주 등 다각적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두뇌인력이 국가사회발전에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는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현격한 사례 한가지만 들자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렌지 재배와 다이아몬드 가공 섬유제품 생산 등이 경제활동의 주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밖의 실리콘밸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인트라넷 데이타통신 시스템에 쓰이는 이더넷이라는 단일 칩 형태의 스위치를 발명한 갈릴레오 테크놀로지사, 와이즈만 연구소 인터넷보안 관련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체크 포인트사,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온라인 암호체계를 개발해 낸 테크니온 등 첨단기업들은 이제 이스라엘의 경제구조와 국가 이미지를 바꿔놓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에까지 절대적 기여를 하고 있다.

과거 이스라엘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던 인도와 중국이 자국의 과학자들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 50여명씩 연수 보내고서 더 보내지 못해 안달이다.

중동 산유국의 눈치를 보느라 이스라엘과 가급적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일본이 이스라엘 벤처 기업 인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죽 일본인이 많이 쏟아져 들어왔으면 텔아비브 힐튼호텔은 아랍 식당 대신 일본 스시 바를 설치했겠는가.

인텔은 이스라엘 두뇌력을 활용하고자 지난해 15억 달러의 첨단 칩 제조공장을 세웠고 독일의 지멘스는 지멘스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즈 공장을 세웠다.

특히 지멘스는 이스라엘 과학자뿐만 아니라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엔지니어들까지 대거 고용해 자연스레 중동평화의 중매자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이슬람국 강경파들은 이렇게 갈 경우 중동지역에 평화가 기어이 정착되고 말아 결국 자신들의 권력기반까지 허물어지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도 이스라엘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식산업이 갈수록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경제성장 중 절반은 지식기반산업 덕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물가안정에도 한 몫 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야말로 이제 일자리며 외자유치가 모두 첨단과학기술자의 국내 활동에 달려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본격 시작된 지 1년도 채 안 된 국내 벤처업계에서 벌써부터 쓸만한 사람이 없다 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지금 한국은 정보통신부문의 인력부족현상이 심각하다.

최근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도 오는 2004년까지 정보통신부문에서 인력부족이 21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런 다급한 실정에 그나마 기존 인력들이 자꾸 미국 실리콘밸리로 진출하고 있다.

최근 국내 인터넷업계에 "미국으로 본사 옮기기"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 이의 전형적 사례다.

이는 특히 성공적인 첨단기업 성가 있는 과학기술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런 미국진출 붐은 지금 초등학교에서부터의 조기유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이스라엘이며 인도 중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들에서도 다 마찬가지다.

현재 프랑스 일류대학 출신으로서 실리콘밸리에 살고 있는 첨단기술인력이 4만명이나 된다.

중국의 가장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 중 하나인 차이나 온라인과 VIP레퍼런스가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1996년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활동중인 첨단기술회사들 중에서 이사진이 순전히 인도인과 중국인 과학기술자들로만 구성돼 있는 사실상 인도와 중국의 첨단기업이 1천7백86개에 이른다.

이들은 4만6천명을 고용해 연간 15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자본의 첨단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 과학기술자들까지 치자면 이들 나라의 두뇌유출은 가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스라엘 과학기술자들도 속속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고 있다.

이스라엘 첨단기술 담당 취재 기자는 더 이상 이스라엘에 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두뇌유출이 진행된다면 어떤 나라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에선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야말로 불꽃 튀기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식경제 구축을 위한 두뇌인력 유치 경쟁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두뇌인력을 싹쓸이하다시피 데려가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현 수준으로 결코 안 된다고 외치고 있다.

미국의 유명 첨단반도체 메이커인 사이프러스 세미컨덕터의 T.J.로저스 대표이사는 "미국 정치가들은 경직된 이민법을 고집하면서 외국의 고급두뇌를 되돌려보내 외국에서 이들이 우리와 경쟁하도록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