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욱 전문위원>

국내에 널리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인도네시아가 외국인 판사 수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마르주키 다루스만 인도네시아 법무장관은 지난 주 부패를 없애기 위한 한 대응책으로서 네덜란드 등 선진국으로부터 판사를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압둘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래 부패척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인도네시아 개혁정부의 국가개조 전략을 드러내는 주목되는 사안이다.

냉전체제 붕괴 이후 오늘날의 무한경쟁 글로벌라이제이션 체제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새 비전으로 떠오른 글로벌루션(Globalution) 전략의 한 단면인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라들은 일단 모두 자유시장 체제로 전환됐다.

당시 세계 모든 사람은 드디어 범세계적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있게 됐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종래 공산국 사회주의국 독재국 연줄 자본주의국 또는 관치국들은 대부분 자유시장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시장 클렙토크라시,즉 절도주의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자유시장을 외치며 허술한 국가운영시스템을 악용해 사익을 챙기는 사례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는 특히 각종 국가 재산을 민영화하고 규제완화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더욱 성행했다.

이 체제의 특성은 모든 계층의 공직자들이 각자 발휘 가능한 권력을 총동원해 사익을 챙기는 데 정신이 없다는 점이다.

또한 이 체제는 결국 정상적 사회규범이 무너져 내리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최악의 경우 무정부상태와 사회해체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외환위기와 경제위기를 겪게 된다.

도날드 블린큰 전 주헝가리 미국대사는 바로 이 클렙토크라시가 이머징 마켓(신층시장)국가들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머징 국가들이 말 그대로 생활수준이 향상되는 신흥국가가 되려면 우선 "이머징 사회"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임스 울펀슨 세계은행 총재도 같은 견해다.

그는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위기를 금융문제로 좁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국가운영시스템과 사법시스템,기업윤리,재산권 보호,정책과 회계의 투명성 등이 총체적으로 문제라는 진단이다.

이 같은 클렙토크라시의 세계적 전형이 인도네시아다.

공직자가 뇌물 영수증을 끊어 줄 정도로 부패한 인도네시아는 트랜스페어런시 인터내셔널(TI)의 99개국 부패도 평가에서 97위다.

98년 여름 인도네시아가 경제위기만이 아니라 사회위기까지 겪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런 인도네시아가 선진사회로 거듭나는 전략으로서 교육받은 인도네시아 중산층들이 수하르토 치하 때부터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 온 것이 글로벌루션,즉 멀리로부터의 혁명이다.

그러니까 위로부터의 개혁은 기대하기 힘들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너무나 위험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국제사회의 일부로 단단히 편입되게 함으로써 클렙토크라시의 원흉들을 옭아매자는 것이다.

국제기준이 국내 모든 부문에 속속들이 확산되게 함으로써 사회적 지능을 높이자는 전략이다.

21세기 세계는 선진국과 신흥국 후진국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투명국과 불투명국으로 양분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이 법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외국에서 법관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스리랑카에서 열렸던 국가경쟁력 제고방안 세미나에서 스리랑카,파키스탄,인도,방글라데시,네팔 등지에서 참석한 재계 지도자와 경제전문가들마다 주제연설을 한 호세 마리아 피구에레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을 자국 대통령으로 모시고 싶음을 호소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 민족특유의 문화와 사회적 응집력을 말살한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부정부패가 정상이고 올바른 일처리가 예외가 되는 클렙토크러시 사회에서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유일한 평화적 방법이라는 사고방식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통한 무혈사회혁명 즉, 글로벌루션의 귀추가 주목된다.

shindw@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