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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노코리아 2000] 제4부 : (7) '과학 강국 러시아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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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서구화의 관문인 상트 페테르부르크.

    이곳 중심지에서 북쪽방향으로 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2,3층짜리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오페(Ioffe) 연구소가 나온다.

    러시아 최고의 과학두뇌집단인 이 연구소는 "잠재력의 풍부, 상업화의 빈곤"이라는 현재 러시아 과학기술이 처해 있는 딜레마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연구소 본부건물 2층 복도에 들어서면 방문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있다.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연구소 설립자 아브람 F 이오페 박사와 레닌상, 스탈린상, 사회주의 영웅칭호를 받은 과학자들의 얼굴사진이 복도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그토록 열망했지만 아직 한명의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허름한 연구소 한 곳에서만 카피차, 세모노프, 란다우, 탬 등 노벨상 수상자가 4명이나 배출됐다는 사실도 놀라울 뿐이다.

    이오페연구소는 과거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물리연구소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원장 알페로프 박사는 최근 광통신, DVD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레이저 다이오드에 관한 이론을 세계 최초로 정립한 물리학자로 매년 노벨 물리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최근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예산은 줄어들고 연구소에서 축적된 기초과학의 결과들이 "돈"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쿨리코프 부원장은 "정부에서 나오는 연구소 예산이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 비해 20분의 1로 줄었다"며 "장비를 교체하는 것은 고사하고 연구원들 월급주는 것이 늘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쿨리코프 부원장은 많은 연구원들이 외국 및 은행 등 비즈니스업계로 나가지만 누구 하나 원망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이오페연구소를 비롯한 러시아내 세계적인 연구소들은 외국자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도의 과학기술이론과 서방의 비즈니스기법을 접목시키자는 것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만 11개 테크노파크가 있고 정보통신관련 벤처기업 5천여개가 활동중이다.

    이 숫자는 최근 몇년간 매년 60%씩 늘어난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체 수요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정보통신 선진 대기업과 제휴를 맺고 자신들의 기술을 상업화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보산업분야를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벤처조류가 러시아의 중심도시들에도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러시아는 한 연구소차원이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명분만의 과학기술대국이라는 "종이호랑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차기 대통령으로 확실시되고 있는 푸틴 대통령대행은 지난달 11일 기술의 날을 맞아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제로노그라드의 과학연구센터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푸틴은 "과학기술의 우수인력이 러시아의 과학기술은 물론 러시아 자체를 구원할 것"이라며 "방대한 기술잠재력을 이용해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지식재산권보호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과학기술계의 딜레마를 비교적 정확히 지적하고 타개책을 제시했다는 전문가들과 언론들의 평가였다.

    또 하나 러시아의 대표적 두뇌집단인 라보치킨 연구소.

    모스크바 북쪽 근교에 위치한 이 연구소는 미국의 NASA(미항공우주국)에 해당된다.

    미국에 앞서 우주개척에 나섰던 러시아내 선봉장이 바로 이 연구소로 우주개척분야에서 7개의 첫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의 무궁화위성보다 무려 30년전에 세계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것을 비롯 유리 가가린이란 인류최초 우주인이 탄생한 곳도 라보치킨 연구소다.

    인류 최초 무인 화성탐사선개발,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등도 이 연구소가 자랑하는 첫 기록들이다.

    지금도 이곳 연구원은 본부에만 6천여명의 연구원들과 10개의 제조공장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맹렬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해외협력센터 블라디미르 카이노프 소장은 "현재 세계에서 우주로봇을 만들고 있는 연구소는 이곳밖에 없다"며 "유럽과 일본으로부터도 1년에 1천만달러 정도의 주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거에 축적해둔 우주항공기술 덕분에 이 연구소는 정부소유지만 정부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도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상업화된 달 관광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등 비즈니스에 적극적인 자세를 숨기지 않는다.

    카이노프 소장은 "한국의 항공산업이 상당히 뒤처진 사실을 알고 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대형프로젝트를 해보면 러시아로부터 엄청난 기술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제의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원천기술강국 러시아가 첨단산업 강국으로 곧바로 나아가는 데는 장애물도 적지 않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Semiconductor Equipment and Materisals International) 러시아지부 알라 파미츠카야 이사는 "반도체이론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가장 일찍 개발한 나라지만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산업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5년 정도 지나면 이 기술마저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금융시스템에 따른 높은 금리로 기업들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매니저나 마케팅기술이 서방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져 단기간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말이다.

    "러시아 과학기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력의 해외유출을 막아 러시아의 잠재력을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정치안정이 관건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회원국을 가진 국제협회에서 일하는 덕분에 첨단분야의 국제적 동향을 비교적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파미츠카야 이사가 내린 러시아 과학기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김광현 기자 kkh@k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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