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바루.보루네오섬 북단의 해안 마을이다.

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부드럽게 춤추는 야자수와 쪽빛 바다 위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인상적인 곳이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곳에 내린 이경호(50) 영림목재 사장은 기다리던 지프에 몸을 싣는다.

울창한 열대림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를 달리길 몇 시간.강가에 도착한 뒤 가늘고 긴 배에 올라탄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이따금 정적을 깬다.

도착한 곳은 산다칸이라는 작은 마을.마중나온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다시 지프를 몰고 산으로 올라간다.

이곳까지 온 것은 나무를 사기 위한 것.서울에서 꼬박 이틀 걸렸다.

하늘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밀림속.이끼와 고사리 뱀이 수만년동안 공생해온 이곳에서 허파속까지 파고드는 나무 냄새를 맡으며 수목을 일일이 살핀다.

수령과 키 직경을 파악하고 옹이나 생채기는 없는지 만져본다.

땅바닥에 앉아 나뭇잎에 싸간 음식으로 허기를 가라앉히면서. 나무는 어떤 자연환경에서 자랐는지 직접 살펴보기 전에는 구매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같은 수종이라도 자란 지역에 따라 목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원목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밀림속을 다니다가 길을 잃거나 폭우속에서 차가 굴러 다치는 일을 종종 겪는다.

이 사장 역시 이런 어려움을 여러번 당했다.

밴쿠버섬에서는 헬리콥터를 타고 삼림지대를 날던 중 짙은 안개에 휩싸여 위험을 겪었고 백두산 원시림지대에서는 폭설을 만나 갇히는 상황을 만나기도 했다.

이 사장이 다닌 곳은 수십개국.특수목을 도입해 팔기 위한 것.사람을 잡아먹는 이구아나가 사는 이리안자야에서부터 파푸아뉴기니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중남미 등등.해외출장 회수는 1백번이 넘는다.

이들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를 들여다 대학에 의뢰해 물성을 테스트하고 한국실정에 맞는지 실제 적용해 본다.

단순히 사다 파는 공산품과는 다르다.

단단한 나무라도 기후가 맞지 않거나 제대로 건조되지 않아 갈라지거나 뒤틀리는 경우도 생긴다.

건자재로 좋은지 아니면 가구나 인테리어재로 좋은지 용도를 개발한다.

이 과정이 수종에 따라 짧게는 수개월,길게는 수년 걸리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가 국내에 들여온 수종은 모두 1백여종.문화재 보수에 쓰이는 백두산 홍송,최고급 가구재로 쓰이는 과테말라산 장미나무,공명이 잘 돼 악기재로 적격인 미국산 연단풍나무,불단용재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인도산 흑단,나무장난감으로 좋은 자작나무 등. 계약을 맺은 입목은 벌채돼 임도와 수로를 통해 바다로 운반된다.

벌크선에 실려 수주일동안 여행을 한 끝에 인천항에 도착한다.

남동공단 영림목재 공장안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원목들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쳤다.

껍질이 벗겨지고 규격에 맞게 잘린 나무는 장롱이나 책상 부엌가구 문틀이 돼서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기업은 모험이다.

벤처만 모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벤처기업인들이 테헤란밸리의 따뜻한 사무실에서 밤샘작업을 하고 있을 때 많은 중소기업인들이 벼락이 코앞에 떨어지는 열대우림속이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툰드라지방,뜨거운 모래바람이 부는 아프리카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김낙훈 기자 nh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