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홍상화 >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진성호가 회의실로 다시 들어왔다.

"회장님이 안 계시는 동안 설명은 대개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소요자금 조달 방법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황무석이 말했다.

"주말에 제가 이현세 이사와 월 스트리트로 가는 이유가 소요자금 조달에 있습니다. 동남아 국가의 외환위기로 전보다는 어렵겠지만 첨단산업인 인터넷사업 확장을 위한 목적이니 자금조달에 별 문제 없을 겁니다. 그리고 해외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경우 중국 청도와 한국에 있는 직물제조업 공장을 처분하여 자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진성호가 말했다.

그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 이해는 하셨지요? 앞으로 3년 4개월, 21세기에 들어갔을 때 대해그룹이 재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 것인지에 대한 관건은 오늘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추진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 자신 건강도, 가정생활도 다 팽개쳐버릴 작정입니다. 오직 한 가지 대해그룹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대해그룹에 속한 임직원의 미래를 위해 제 인생을 바칠 각오입니다. 여러분에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Follow me, Lead me, or Get out of my way."

진성호는 특히 마지막 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모두에게 악수를 청했다.

마지막 사람과 악수를 한 후 오른손을 살짝 들어올린 후 회의실을 나왔다.

진성호는 곧바로 회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몸을 던졌다.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아내의 냉정한 어투로 보아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김명희와의 관계를 간통죄로 고소한다는 것은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이혼문제가 깨끗이 해결될 때까지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하여 벌써 석달 반째 전화통화만 했지 만나지 않아서 간통의 증거를 법정에서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또한 아내가 간통죄로 고소하면 이혼이 선결조건이므로 위자료를 많이 받아낼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나 김명희를 모델계에서 영원히 추방하겠다는 아내의 말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해실업의 주가를 조작했다는 증거를 아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2만5천원 선에 있던 주가를 지난 1년 사이에 7만5천원으로 조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 사실이 증권감독원에 알려지면 철창행 신세를 면할 수 없음이 자명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자신의 지시에 의하여 황무석 부사장만이 단독 개입하여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지난 1년동안 서서히 진행했는데 그 증거가 남을 리 없었다는 점이다.

경영에는 관여하고 있지 않지만 대주주로 있는 형과 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해실업의 박 사장도 모르고 있는 판인데 아내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