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는 왜 몽니를 부렸을까"

미국에 나와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뉴욕 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공화당=맥케인, 민주당=고어" 지지를 공식 천명했던 것을 놓고 뒷공론이 한창이다.

타임스가 이같은 내용의 사설을 게재한 것은 지난 5일.

뉴욕 캘리포니아 등 16개주에서 동시에 예비선거가 치러진 7일,이른바 "슈퍼 화요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 신문은 대결전이 벌어진 "슈퍼 화요일" 당일의 사설란에 이들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재차 천명하기까지 했다.

뉴욕 타임스의 이런 제스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우선 "대세"가 거의 판가름난 시점에서 왜 특정 후보의 지지를 천명했을까 하는 점이다.

"슈퍼 화요일"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공화당의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당 경선에서는 물론 11월의 본선에서도 승리가 유력한 선두 주자로 꼽혀 왔다.

이런 사실을 모를리 없는 뉴욕타임스가 "안될 사람"인 맥케인을 굳이 공개적으로 지지한 건 무슨 배짱이었는가.

이런 류의 뒷공론에는 "한국에서라면..."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의 언론이라면 과연 "승산이 희박한 도박"을 그처럼 걸 수 있었겠느냐는 반문이 담겨 있다.

차기 정권으로부터 "괘씸죄"에 걸릴 지도 모를 일을 자초한다면 그것은 무모할 뿐이다.

그럼에도 뉴욕 타임스 뿐 아니라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들은 이런 "무모한 일"을 선거때만 되면 반복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분명한 원칙과 "지지 방정식"이 있다.

예컨대 공화당 후보로 맥케인을 지지했던 것은 "정부 역할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과 진정한 개혁 마인드"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타임스는 이런 방정식에 따라 과거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도 때마다 지지 후보를 천명하는 작업을 거르지 않아왔다.

진보적 논조의 신문이라는 평에 걸맞게 지난 96년의 대통령 선거 본선때는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를 지지했지만, 2년전의 뉴욕시장을 뽑는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의 로버트 줄리아니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대세"나 "간판"이 아니라, 정책과 인물됨이라는 분명한 원칙의 잣대가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슈퍼 화요일을 코앞에 두고 공표됐던 뉴욕 타임스의 "배짱"은 새삼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