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포드를 시작으로 대우자동차를 탐내는 외국자동차 회사들이 실사에
들어간다.

해외매각에 대한 국내 시각은 양분돼있지만 호의적인 분위기가 우세해보인다

우선 정부부터 그렇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은 얼마전 "어느 나라 자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한국에 4백만대 규모(국제경쟁력 규모)의 차생산력이 유지되는 것이 중요
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대우차를 외국업체가 인수할 경우 아시아 생산
기지로 활용하고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로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극히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대우차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국민경제에 부담만 커지는데다 국제 공개입찰
을 할 경우 현실적으로 외국업체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우차라는 돈 먹는 하마를 팔아치우는 것은 채권단 차원에서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 지나지 않는다.

산업발전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 제조업의 장래를 좌우할 자동차산업을
담보로 대도박을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외국업체가 인수하면 대우 빚도 갚고 자동차
기술도 발전하고 수출도 잘 돼 ''만사형통''할 것처럼 말한다.

이는 다국적기업을 너무 모르는 순진한 시각이다.

지난 94년 모토로라의 경기도 파주 공장건설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지금처럼 큰 기대를 했다.

대표적인 미국기업이 휴전선 턱밑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는 것은
미군 1개 사단이 새로 배치되는 것보다 낫다면서 흥분했었다.

기꺼이 수도권의 공장신증설이나 이전을 억제해온 공업배치법령에 예외규정
을 만들어 적극 뒷받침해 주었다.

그 때도 정부는 모토로라가 파주공장을 동북아 생산기지로 키울 것이고
첨단기술이전이 촉진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그렇게해서 96년 완공된 모토로라 공장은 불과 3년만인 작년 7월 대만의
ASE에 넘어갔다.

물론 파주공장은 주인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가동중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대한 미군 1개 사단 배치효과는 물건너 간 얘기가 됐다.

더욱이 1백% 단순조립 하청생산만 하는 대만업체로부터 기술이전이나 촉진
효과는 난망이다.

모토로라의 한국공장 포기는 글로벌 아웃소싱(외부조달) 전략에 따른
것이다.

모토로라같는 미국기업들은 경영환경 변화에 즉각 대응, 변신하는 것을
능사로 안다.

이런 다국적기업(Mutinatioanl company)을 초국적기업(Transnatioanl
company)이라고 부르는 것도 신속한 진출과 철수를 주저하지 않는 속성에서
비롯됐다.

외국기업유치에 관한한 세계제일의 노하우를 지녔다는 영국도 몇년전
도요타가 기존 영국공장을 확장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다가 프랑스에 유럽
제2공장을 짓기로 전격 결정하자 파운드화가 휘청거리는 곤욕을 치렀다.

이런데도 우리의 다국적기업관은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내부품업체의 절반이 외국업체가 대우차를 인수
하면 수출기회도 늘고 기술도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정부나 부품업체 기대대로 될까.

이미 미국의 빅3는 인터넷을 통한 글로벌소싱에 착수했다.

몇몇 미국기업들은 오래전부터 상업위성을 띄워 놓고 지구촌 구매를 해왔다.

이런 기업들이 대우차를 인수한 다음 "품질에 비해 비싸다"는둥 이런저런
구실로 국내조달을 기피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재경부 공무원들이 창구지도를 해서 어거지로 쓰도록 할 것인가.

수출문제도 마찬가지다.

외부 시각도 우리 기대와는 판이하다.

최근 비즈니스위크지는 외국업체들의 인수전을 놓고 "내수규모나 성장성에서
탐나는 한국시장(세계 8위권)을 뚫기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이런데도 정부는 "동북아 전진기지로 육성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감에
젖어있다.

당국자들에게 20여년간 가동해온 한국 공장을 최근 폐쇄한 독일계 다국적
기업 임원의 고언을 들려주고 싶다.

"일류 다국적기업을 토착화시키려면 한국이란 나라 전체가 마치 특급호텔
처럼 운영돼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는 과욕이다"

그는 독일이 GM계열 오펠을 완전히 독일화시킨 비결은 미국을 압도하는
자동차기술 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월가에 버금가는 프랑크푸르트의 금융서비스 수준, 유럽에서 영국 네덜란드
다음으로 잘 통하는 영어소통문화, 미국이 부러워하는 치안과 사회보장등의
합작품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환경을 단시간에 정비해서 대우차를 인수한 외국업체가 이땅에
정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

이런 난제들에 대한 해법없이 다국적기업을 한국화시킬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은 "고래를 금붕어 항아리에 가두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다.

< leed@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