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기 위해 차고 문을 열고 보니 노랑색 차 한대가 차고 앞을 막고
있었다.
차 꽁무니에서 뻗어나간 사다리가, 그 위에 매달린 바구니속에 들어앉은
두 남자가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그들 아래로 다가갔다.
"아저씨, 차가 나가야 하는데요"
그들은 나를 힐끗 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조금 약이 오른 내가 한번 더 소리를 지르자 그들 중 한 사람이 "금방
끝나요"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금방 내려오지 않았다.
끝났나 하는 순간 사다리를 움직여 맞은 편 전선의 무언가를 손보고, 두
사람이 번갈아 담배 한 개비씩을 피우고, 아마도 그래야 하는 거겠지만 작업
한 장소를 카메라로 찍고, 그런 후에야 철커덕철커덕 소리를 내며 사다리를
내렸다.
거듭 시계를 들여다보고 서 있는 것밖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작업한다고 알려줬으면 차를 미리 빼놨을 거 아네요"하고 나는 좀 째지는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맹세코 나는 "미안하다" 한 마디만 듣는다면 금방 다소곳해질
작정이었다.
그들중 하나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금방 끝냈잖아요"하는 바람에 나는
드디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십분이 금방이에요? 그게 무슨"하는 찰나, 그 남자가 에잇, 하더니
처음 듣는 상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차에 올라 부르릉 시동을 걸었다.
무언가 그럴 듯한 욕을 한마디 해주고 날쌔게 그 자리를 빠져오고 싶었던
나는 결국 그 자리, 그 경우에 어울릴 단 한가지의 욕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상소리가 난무한다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빌려보고
책장을 뒤져 우리말 상소리사전을 찾아냈다.
나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몇가지 상소리를 연습했다.
"다음에는 꼭 써먹어야지"다짐하면서.
같은 경우를 당하더라도 또다시 씩씩거리고 말뿐일 것을 알면서도 그러나
우습게도 속이 후련해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