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철 < 기업메세나협회장 / 하나은행 회장 >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한 부가가치 창조가 생산체제의 중추를 이루는
시대다.

문화 예술을 숭상해 시민의 창의성을 계발해야 사회발전이 이뤄진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산업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자연환경과 생태계는 심각한 위협을 겪지
않았는가.

이를 극복하고 물질중심의 문명체계가 빚어 놓은 사회적 불균형과 빈부의
격차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화를 바탕으로 한 인간적 유대를 회복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라마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전개에 대응한 새로운 문화환경을 만들기
위한 계획과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유엔이 새로운 세기를 문화의 세기로 정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는 물질문명을 싣고가는 수레다.

개인의 부는 물론 아무리 풍요롭고 편리한 사회적인 물질 문명도 이를
지탱하고 유지해 갈 수 있는 문화수준 없이는 모래위에 세워놓은 화려한
건축물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를 역사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문화에 바탕을 두지 못한 경제의 발전은
미래가 없다고 경고한다.

세계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깃든 상품을 기념
으로 사게 마련인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상품을 찾기가 힘들다고 한다.

한국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한국 상품은 단지 싼맛에 산다고들 한다.

그렇게 하여서는 머잖아 한국의 경제발전이 한계를 맞게 될 것이다.

기 소르망은 그렇게 충고했다.

우리가 새천년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문화비전 2000년 위원회를 설치한
까닭은 무엇인가.

새로운 세기에 우리 문화의 나아갈 방향과 이를 실천할 의지를 다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문화의 중요성 때문이다.

문화 예술의 창달이란 계획과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 실천방안을 찾아본다.

첫째로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구현할 단계적인 계획과 실천 방안을 정부시책에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통문화의 보존과 발전,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달은 공장을 짓고 길을 닦는
것처럼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결실을 기대하기 어렵다.

꾸준히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예술인들의 정진을 뒷받침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은 문화를 생활화해야 한다.

문화의 다양성은 그 수준을 높이는 첩경이다.

그러므로 개성있는 지방문화의 발전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시책도 아울러
마련되어야 한다.

중앙의 문화나 모방하면 지방은 영원히 중앙에 의존하게 된다.

외형위주의 시설투자에 고작하고 있는 우리의 문화 시책으로는 남들처럼
진취적인 문화의 세기를 열어갈 수가 없다.

정치적인 주의.주장을 초월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고 이를 우선 추진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능동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차질없이 실천해
가는 용기있는 노력이 절실하다.

둘째는 돈과 예산에 못지 않게 정부를 비롯한 각계의 지도층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모으고 이를 생활화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일이다.

문화예술은 물질적인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

사회각계의 지도자들이 공연이나 전시등 문화예술 행사에는 당연히 참석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되고 그들의 사교적인 모임도 문화예술활동과
어우러지게 한다면 사회는 더욱 여유로워지고 생활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각계의 지도자들이 격려 단합 대책회의와 같은 모임에 참석하여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평소에 문화 예술인들과 어울려 담소하며 진정 사람들의 행복에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모습도 질 높은 지도력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 정부가 고급공무원들에게 한주에 한번 이상 공연.전시장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도록 하는 관례를 만들어 지키게 하는 일이 오늘의 프랑스
문화수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명념해야 한다.

셋째 사회 각계가 문화예술을 지원하고자 하는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인 지원책을 더욱 강화하는 일이다.

전통 문화와 예술을 보호하고 새로운 문화예술을 잘 자라게 하는 일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재정적인 지원이 뒷따라야 한다.

정부의 예산이 있지만 그것으로는 언제나 부족하다.

여유있는 개인이나 기업이 이런 분야에 재정적 지원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세제상에 상응하는 혜택을 주어야 한다.

또 이러한 일을 하는 기업이나 개인을 발굴하여 정부에서 포상함으로써
이를 자극하고 격려하여야 한다.

특히 사회로부터 많은 직.간접 혜택을 누리고 있는 기업이 시민정신을
발휘하여 스스로의 기업문화 수준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한 기업이 한가지 문화지원 사업을 갖도록 권장하면 좋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일은 문화의 세기를 차질없이 열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는 모든 선택을 좀더 문화적
기준에 두어야 하겠다.

< bcyoon@hanaban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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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부산대 법학과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
<>한국투자금융 사장
<>하나은행장
<>현 하나은행 회장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