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온 가족이 고통을 받게 된다.

병원에서 환자를 수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넉넉해 간병인을 따로 둘 수 있다면 모르지만 대게 식구들이
돌아가며 환자를 살펴야 한다.

환자가 노인인 경우엔 더하다.

심한 경우 가족중 일부가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다.

이런 한국적 의료현실을 감안해 보호자 없이 운영되는 병원이 서울 도심에
생긴다.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한국병원(원장 한두진)은 15일 문을 여는
"노인병 센터"를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하기로 했다.

노인병 환자를 전문 간호인력이 24시간 돌보도록 한다는 것.

환자 가족이나 친지들은 아예 병원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게 할 예정이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만 할 수 있다.

한국병원은 이 병원 1백50개 병상 가운데 30병상을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할 예정.

이곳엔 전문 간호인력 6명을 배치한다.

이들은 환자간호와 함께 세면 목욕 대소변수발 침상정리도 맡게 된다.

폐쇄회로 TV와 무선호출 시스템도 갖출 예정이다.

그래도 간병인을 두겠다는 가족에게는 공동간병인을 허용하기로 했다.

간호인력이 넉넉한 만큼 간병인은 5명 정도의 환자를 함께 돌보게 한다는
것이다.

공동간병인을 쓰지 않는한 추가로 비용을 더 받지는 않는다.

간호사 임금이 더 들어가지만 병원에서 부담한다는 것.

한원장은 "부부가 모두 일을 나가야 하는데 생활형편이 어려워 간병인을
두지 못하는 딱한 경우를 많이 보아 왔다"며 "환자와 가족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부담도 문제지만 가족이나 친지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는 데다 병원에서 먹고 자 환자와 가족들의 감염 가능성도 높다고
지적했다.

한원장은 당장은 병원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는 만큼 노인환자에 대해서만
보호자 없는 병실을 운영하고 병원의 수지상태를 보아가며 병실을 더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환자 가족의 병실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무분별한 방문으로 환자의 안정이 보장되지 않고 어린이나 노약자 방문객들
은 오히려 병에 걸리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센터 서정삼 소장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보호자
없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환자만 병원에 홀로 남겨둘 수
없다는 통념과 간호인력 부족 때문에 보호자들이 병실에 상주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편안히 생업에 종사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양준영 기자 tetrius@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