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햄프셔 예비선거가 막을 내렸다.

조지 부시는 존 매케인을 추월하지 못했고 앨 고어는 아이오와에 이어
햄프셔에서도 빌 브래들리를 눌렀다.

큰 이변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흥미거리를 찾아 뉴 햄프셔 선거의 이면을 뒤지고 다닌 외지인들
에게 현지 최대 일간지인 "유니온 리더 & 선데이 뉴스"의 사설은 큰 위안
이 됐다.

투표를 앞두고 열흘이상 계속된 일련의 사설들은 한국에서 한창 일고 있는
낙선운동기사를 읽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이 신문 1월 20일자 사설은 "민간기업이 제공하는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매케인이 정치자금개혁법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군사 외교 강자라는 매케인의 자기주장은 허구"(1월26일자) "낙태
찬성자(pro-choice)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고어와 매케인은 유유상종의
표본"(1월 28일자) 이라는 제목의 사설도 있었다.

부시를 "완전히 주저앉아 버린 선거유세마차(bandwagon)"(1월30일자)로
부른 것은 물론 "유머감각이라고는 0점인 부시와 매케인(1월24일자)" 등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지지목적의 사설 또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왜 포브스여야 하는가"(1월 30일자) "포브스야말로 레이건 대통령의
진정한 후계자"(1월25일자) "보수주의를 관철시킬 수 있는 황금기회이자
교육개혁의 화신인 포브스"(1월21일자) 등 사설은 혹시 이 신문이 포브스
소유의 신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유발할 정도였다.

하지만 현지 최대신문의 일방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포브스가
매케인과 부시에 이어 14% 정도의 지지밖에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재미있는 결과다.

목소리의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는 미국이지만 이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미국유권자들의 표심을 대변하는 단면이었다는 중평
이었다.

선거와 관련한 시민단체(NGO)들의 운동 또한 재미있다.

낙태금지운동을 벌이는 단체들은 낙태를 찬성하는 인사들을 골라 그들의
행태와 기록을 공개하고 이들의 공직진출을 막기 위한 적극적 활동을 마다
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임신중절여부에 대한 선택은 임산부의 고유권한이라고 믿는 단체
의 활동 또한 말릴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두 단체가 취한 대립적 관계 때문에 유권자들은 양자가 취하는 입장을
보다 선명하게 파악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유권자 나름대로의 보다 확고한
낙태관을 투표에 연결시키게 된다는 게 한 현지 유권자의 설명이다.

워싱턴 소재 케이토(CATO)연구소는 개방주의를 표방하는 연구소다.

최근들어 미국의 무역수지적자가 늘어난다는 보도에 접한 CATO는 이를
"기쁜 소식"이라고 표현했다.

자유개방주의에 관한 한 철저한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무역적자가 조금만 늘어나도 난리가 난 듯 떠들썩한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의회 의원들이 표면적으로는 개방을 지지한다 하면서도 무역관련 법률법안
처리기록을 세밀히 검토해보면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는 열 손가락을
채우지도 못하는 정도"라는 게 CATO의 주장이다.

흑백문제, 환경, 노동문제등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활동 또한 주목을
받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권위를 인정받을 만큼의 전문성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사연구 그리고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들을 사람이 없는 것이 미국이다.

정치권의 이기주의에 분노한 한국 NGO의 활동은 상황적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종교적 이념적 신념이나 전문성을 도외시한 채 백화점
또는 도매상식 NGO활동은 시민활동의 순수성과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한 두부제조업체 본사 앞에서 유전자조작콩 사용여부를 문제삼아
시위를 벌이던 한 시민단체가 나름대로의 입장을 설명하고 싶다는 회사측의
요청을 이유없이 거부하고 방송사들의 취재 TV 카메라 철수와 동시에 시위를
그만두고 서둘러 떠나는 모습은 우리나라 NGO활동의 씁쓸한 단면이었다는 게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한 중견검사의 촌평이다.

< 맨체스터(뉴 햄프셔주)=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