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그룹에 근무하는 Y대리(32).

그는 요즘 회사를 건성으로 다닌다.

오는 2월말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다.

그대신 선배와 동업키로 한 인터넷사업 준비에 날밤을 새울 때가 많다.

사실 사업 일정을 놓고 보면 벌써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연말부터 쏟아지고 있는 상여금과 성과급이 그의 발목을 잡아놓았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려면 어차피 한 푼이 아쉽게 마련.

석달 사이에 1천만원이 넘는 목돈을 추가로 만질 수 있는데 회사에 적을
달아 놓는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2월 이직 대란설".

2월말께 대기업 직원들이 대거 벤처 쪽으로 자리를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강하게 나돌면서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당수의 대기업 직원들이 인터넷등 벤처기업으로 방향을 정했고 창업전선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마음은 정했지만 퇴직조건을 유리하게 조정하느라 지난해 연말부터 계속
버티고 있는 "기회파"들이다.

LG전자 C과장(37)도 같은 케이스.

그는 작년 12월 1백%의 정기 보너스외에 1백80%의 성과급을 받았다.

1월 들어서는 "새천년 격려금"이라는 명목으로 1백40%의 성과급을 또
수령했다.

오는 2월 설날에는 1백%의 정기 상여금이 나온다.

종업원들은 12월부터 2월초까지 석달이 채 안되는 동안 5백20%의 임금이
추가된 셈이다.

C과장은 기본급이 1백30만원이어서 7백만원 가까이가 쌓였다.

게다가 퇴직금도 늘었다.

상여금이나 성과급은 12개월 평균으로 나뉘어 퇴직금에 가산된다.

67만원 정도 늘어 그의 근속년수대로 6백만원 정도가 늘어났다.

작년 12월초 회사를 그만 뒀다면 1천3백만원 가량의 손해를 볼 뻔한
셈이다.

물론 급여는 제외한 금액이다.

현대자동차 K(39) 과장은 연봉조정을 기다린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의 혹한속에 연봉이 큰 폭으로 깎였던 탓에 퇴직금도 크게
줄었다.

회사를 그만 두려는데 회사가 새해부터 연봉을 전체적으로 올려준다고
약속했다.

전체 인상률은 15~20%.

과장급의 평균 연봉은 2천7백만원에서 3천3백만원으로 인상됐다.

K과장은 게다가 고과가 좋아 S등급의 평가를 받아 연봉이 3천5백만원으로
조정됐다.

단숨에 연봉이 8백만원이나 오른 것.

K과장은 따라서 2월말이나 3월말 퇴직을 하면 퇴직금에서 큰 이득을 보게
된다.

퇴직전 3개월 평균 임금이 크게 늘어나 퇴직금이 7백만원 가량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의 실적이 좋아 2월중 100% 정도의 성과급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상여금이 없는 연봉제이지만 급여를 빼놓고도 1천만원 정도를 더 벌어들이게
된 셈이다.

이런 현상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사원에게까지 연봉제를 적용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연말에 3백~4백%의 성과급
을 지급해 벤처로 옮기려던 상당수의 직원들을 잡아 놓았다.

SK로 넘어간 신세기통신의 경우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도 연말에 2백%의
위로금을 지급했고 설에는 1백%의 정기 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그래도 SK로 넘어가 서러움을 당하느니 받을건 받아챙긴뒤 회사를
관두겠다는 직원들이 많다.

"2월 이직 대란"은 한 회사, 한 업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산업의 중심축이 정보기술(IT) 산업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데 따른
불가피한 트렌드다.

그 추세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을 뿐이다.

한 회사 인사담당자는 "작년 12월 이후 "벤처 엑소더스 열풍"이 한풀
꺾이는듯 보였지만 "2월 이직 대란"을 앞둔 잠복기를 보내고 있을 뿐"이라며
"회사가 스톡옵션제도 사내벤처제도 등 획기적인 성과배분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벤처 열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 김정호 기자 j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