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올해 경제정책방향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이 "따뜻한 시장
경제"다.

물론 경제학 교과서에 실려 있거나 학자들이 그 개념을 정립해 놓은 학술
용어는 아니다.

재정경제부 당국자들의 설명으로는 생산적 복지와 구조개혁에 의한 시장
경제의 정착을 양립시킬 수 있는 개념을 찾다보니 그같은 표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신조어인 까닭에 아직은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정리돼있지 않은 듯하다.

"효율성과 경쟁을 중시하는 정책에 더하여 중산.서민층 생활의 질을 높이는
"따뜻한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이를 위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겠다"

올해 경제정책운용의 세번째 과제로 제시한 "생산적 복지체제의 구현"을
설명하는 내용중 일부다.

이 문맥의 전후로 보면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같다.

때가 때인만큼 이를 두고 선거를 의식한 선심정책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만하고, 또 알맹이없는 언어의 유희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시각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지난 2년간의 IMF체제를 겪어오면서 중산층 몰락과 소득분배 악화가
우리경제의 최대 과제로 등장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IMF체제 이후 우리경제는 효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소위 신자유주의
논리가 강화돼 왔다.

달리 표현하면 미국식 자본주의의 도입이 폭넓게 진행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의 내재적 모순 가운데 하나가 약육강식을 초래하는 정글의 법칙
이라는 사실이 분명한 만큼 그같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기능의 강화가
분배구조의 악화에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같은 차가운 결과를 보완하자는 것이 따뜻한 시장경제의 추진인 셈이다.

더구나 개방경제체제하에서 정보화사회가 진전될수록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게 공통된 우려이다.

그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려는 정책방향의
설정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다만 정부가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따뜻한 시장경제"의 지향을 생산적
복지체제 구현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당면과제로 취급한 것은 과제의
중요성에 비해 소홀한 감이 없지않다.

성장 물가 국제수지를 거론하기 이전에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마땅하고, 또 그만큼 신중한 판단과 검토과정을 거치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했다.

복지체제의 구축은 실제 정책수단을 강구하는데 있어서 생각만큼 쉬운
과제가 아니다.

성장과 분배는 상호보완적인 측면이 없지않지만 현실적으로 상충되는
효과를 내는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분배정의 실현을 위해 재정의 역할을 강화한다면 재정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현실은 금융구조조정등으로 야기된 큰 폭의 재정적자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정부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올해 정부경제정책의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만 봐도 쉽게 알수있는 일이다.

정책을 조율하고 목표를 재정립해야 할 과제는 재정운용뿐만이 아니다.

"따뜻한"정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모든 경제정책의 손질이 불가피
하고 민간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도 달라질수밖에 없다.

정부가 애용하는 "시장경제"의 현실적 의미도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소유구조와 자산운용, 그리고 기업의 조직형태까지를 규제하고
간섭하면서 과연 시장경제를 강조할수 있을 것인가.

제조업의 공동화 우려를 기득권 보호로 치부할 성질의 것인가.

정보의 산업화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산업의 정보화로 이어져 신산업의
발전은 물론 기존산업의 기술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화를 달성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라고 볼 때 정보화의 추진은 이대로 좋은가.

경제환경의 변화로 유망한 정보통신업체들이 각광을 받고, 그들의 주식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자칫
한탕주의를 부추길 우려는 없는가.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과제들이 많다.

정부의 설명대로 우리경제는 지난 2년간 외환유동성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고
구조개혁의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면서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극복해야 할 위험요인과 과제도 많이 남아있다.

분배정의의 실현못지않게 경제성장의 동인을 발굴하고 성장잠재력을
키워나가는 일도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다.

"따뜻한 시장경제"가 언어의 유희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동안 추진해온 개혁정책의 성과를 냉철하게 진단해보고, "따뜻한
시장경제"의 진정한 의미와 기준, 그리고 판단의 잣대를 좀더 명확하게
정립하는 작업을 포함해 진정한 시장경제의 창달전략을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