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무역장벽"

규격인증을 두고 하는 말이다.

품질이나 안전 등을 강조하는 선진국시장에서 자신들이 정한 규격기준을
맞추지 못한 상품은 국경에서 출입금지를 당하고 있다.

국내처럼 품질이나 안전등에 신경을 덜 쓰는 시장에서는 규격이 그저 훌륭한
제품이라는 사실을 선전하기 위한 치장술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수출시장에서 규격인증은 시장진입여부를 결정하는 출입증이다.

최근에는 인식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훌륭한 기술, 저렴한 가격, 넓은 시장을
가진 제품이라도 규격인증이라는 "부비 트랩"에 걸려 넘어지는 중소수출기업
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미국의 자동차용 에어필터를 수출하는 유일에어필터는 지난 98년초
미국바이어로부터 1백20만달러의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ISO9002 규격을 충족하지 못해 주문이 취소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다.

이 회사는 각고의 노력끝에 결국 98년말 ISO2001 인증을 받아 수출을
재개할 수 있었고 99년말에는 미국 안전규격인 UL까지 받아 올해 수출액이
지난해보다 30% 늘어나게 됐다.

이와는 반대로 국제규격인증에 관련된 컨설팅을 잘 받아 수출시장도 넓히고
생산성향상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에어콘에 쓰이는 냉동용 서비스밸브를 생산하는 유니온금속은 96년말부터
큐펙스코리아로부터 ISO9001컨설팅을 받아왔다.

수출시장을 넓히려던 이 회사는 ISO9001의 규격인증을 받은 99년부터
미국과 일본의 내쇼날 마쓰시다 등에 5년간 5백만달러어치의 물량을 수출하는
길을 확보했다.

마쓰시다로부터는 외국인업체로는 처음으로 무결점 품질상을 수상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유니온금속은 규격인증을 받아 수출길만 넓힌 게 아니라 생산성과 품질도
크게 향상되는 부수익을 얻었다.

자체평가결과 생산성과 품질이 30%가량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세계각국은 겉으로는 무역장벽을 없앤다고 하지만 비관세장벽을 오히려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안전 보건 품질 등에 관련된 기술장벽이다.

질 낮은 상품으로 자기네 시장을 넘보지 말라는 얘기인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수출중 이같은 기술장벽으로 인한 수출감소효과는 연간 2백5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산업기술백서)

최근들어 기술장벽은 하나를 넘으면 또다른 장벽이 앞을 가로막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경영시스템에 대한 인증인 ISO9000이 필요해 이를 충족하고 나면
또다른 기준을 만족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공필수만이 아니고 여러가지 선택과목을 다 이수하라는 뜻이다.

인증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안전규격인
UL(미국보험협회안전시험소)이다.

UL은 신체의 상해 인명 재산피해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1894년부터
운영해왔다.

전자 전기기기 기계기구 건축자재 건설기기 소화기기 선박제품 등 1천4백개
폼목이 대상이다.

초창기에는 보험회사가 보험금지급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일부도시에서
개별적으로 실시했으나 현재는 소비자제품안전법을 만족하는 수단으로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이를 자국의 규정으로만 제한하지 않고 캐나다 유럽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인증기준으로 활용한다는 데 있다.

미국은 지난해초 UL을 캐나다까지 포함하는 CUL마크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미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EU(유럽공동체)의 CE마크서비스까지 추가,
미국-캐나다-유럽을 잇는 광범위한 인증망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2만5천개의 국내 중소수출기업중 규격인증
을 받은 기업은 지난해 기준으로 7.2%에 지나지 않는다.

중소기업청은 이런 환경변화에 중소수출기업들이 적응토록 하기 위해 올해중
규격인증에 드는 비용 81억원을 무상지원하기로 했다.

< 안상욱 기자 sangwoo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