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생명공학의 메카, 리켄 ]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 있는 이화학연구소(리연.RIKEN).

일본 과학기술의 자존심이자 연구활동의 중심이다.

그중에서도 게놈과학연구센터(GSC)는 리켄의 핵과 같은 존재다.

기자가 기타사토대학 캠퍼스 안에 자리잡고 있는 GSC를 방문한 시각은 밤
8시.

다소 늦은 시간이었으나 안내를 맡은 도요다 박사는 "우리에겐 시간 개념이
없어 괜찮다"고 말했다.

연구실마다 수많은 장비와 골똘히 뭔가에 집중해 있는 연구원들로 빼곡한
것은 역시 밤낮이 따로 없는 모습이다.

24시간 불을 밝히는 GSC.

지금 이곳에선 세계적인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인간 유전자의 구조를 완전히 해독해 내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그것.

이 프로젝트를 위해 미국 유럽(영국 독일 프랑스)과 함께 일본이 공동으로
매달리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리켄의 GSC가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는 23쌍인 인간 염색체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해 내는
것으로 연구가 완성되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모든 질환을 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인류 역사에서 아폴로의 달착륙보다 더 의미있는 진보를 이룩
하는 겁니다"(도요다 박사)

GSC가 맡고 있는 연구과제는 11번과 18번, 21번 염색체내 유전자의 염기서열
을 밝혀 내는 것.

이미 22번 염색체의 유전자배열과 구조는 GSC를 주축으로 미국 영국팀이
공동으로 지난해 11월 해독을 끝냈다.

이 가운데 21번 염색체는 노인성 치매나 알츠하이머, 백혈병 등과 관련된
것으로 그 구조가 밝혀지면 세계 과학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이 염색체 해독에 참여하고 있는 시퀀싱(Sequencing)팀의 한국 과학자
박홍석 박사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인간의 화성착륙 정도에 비견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GSC 연구팀은 오는 2월말을 D데이로 잡고 막바지 연구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GSC가 이처럼 세계적인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연구인력
이나 시설면에서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규모부터 그렇다.

GSC가 게놈프로젝트에 쏟아붇고 있는 액수는 연간 3백억엔(3천억원).

한국의 전체 출연연구소 연간 연구개발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각 연구실마다 수억원씩 나가는 고가장비가 수십대씩 들어서 있다.

3백84개 DNA 샘플을 불과 네시간만에 해독해낼 수 있는 메가메이스장비만도
시퀀싱팀에 14대가 있다.

이 장비는 대당 10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장비.

국내의 관련 연구소에 한대밖에 없는 비슷한 장비보다 수십배의 능력을
자랑한다.

연구인력도 최고 수준이다.

GSC에서 게놈프로젝트에 매달리는 5개 연구팀의 박사급 연구인력만 2백여명
에 달한다.

GSC의 유전자구조분석팀장인 스즈키 박사는 "24시간 연구를 통해 매일매일
분석해 내는 DNA 정보를 미국 유전자은행(NCBI)에 보고하고 있다"며 "오는
3월말까지 인간염색체의 90%를 읽어내는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본 과학기술을 대표하는 최고.최대연구소 리켄에는 GSC 같은 세계적인
연구그룹이 5개나 더 있다.

사이타마현 와코시 리켄본부에 있는 뇌과학연구센터(BSI)도 그중 하나다.

BSI에서는 인체의 가장 복잡한 영역인 뇌의 구조를 분석해 내는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뇌는 자연과학분야에서 마지막 프론티어 영역으로 분류됩니다. 뇌과학
연구 진척에 따라 인식 사고 등 고도의 인간 정신기능이 밝혀지는 것과
함께 알츠하이머병 극복 등 의료기술의 질적 향상이 기대됩니다. 뿐만 아니라
뉴로(신경망)컴퓨터 개발 등 신기술및 신산업 창출에도 막대한 효과가 예상
됩니다"(뉴런기능연구팀 요시하라 박사)

BSI의 뇌연구는 크게 "뇌의 이해" "뇌의 보호" "뇌의 창조" 등 3개 분야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뇌의 이해는 인식 지능 학습 감정 언어 기억 등 인간의 뇌기능을 밝혀
"인간이 왜 인간인지"를 연구한다.

"뇌의 보호"는 치매 등 뇌질환과 노화의 극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뇌의 창조"는 뇌의 정보처리를 모방한 새로운 지능형 소자(예컨대 신경회로
망칩)및 시스템(뉴로컴퓨터), 인간형 로봇 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하나같이 당장 실현불가능할 것 같은 미래와 연관된 것들이다.

그러나 연구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뇌기능 분자수준 연구, 뇌세포내 정보흐름연구, 기업학습기능연구, 신경
회로다이내믹스연구 등 모두 25개 과제별로 2백여명의 연구원이 분산돼
개별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연간 뇌연구에 투입되는 예산만도 1백13억엔(1천2백억원 정도)에 이른다.

연구과제별 전략목표도 매우 실질적이다.

뇌의 창조 부문에서는 오는 2005년까지 학습기억에 쓰이는 뉴로칩(1백만
시냅스 규모)을 개발하고 이어 2010년까지는 1억시냅스 규모의 사고기능을
가진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심지어 앞으로 20년후에는 인간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뇌형로봇을 개발
한다는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다.

리켄의 시마다 행정실장은 "BSI의 연구성과는 일본내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톱수준"이라며 "최고 연구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진의 3분의 1 정도를
해외에서 공모를 통해 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과학기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리켄.

명성 만큼이나 연구자들의 표정에는 생명공학 등 첨단 연구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이루겠다는 자신감이 가득차 있다.

< 사가미하라.와코=정종태 기자 jtchung@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