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을 열며] (6) 문화의 에너지를 모으자..신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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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 < 신씨네 대표 >
1970년 미국의 드 팔머 (De Palma) 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실험하던 중,
입력된 에너지의 양보다 출력이 더 커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 현상을 "N-이펙트 (N-effect)"라고 이름붙였다.
이른바 초효율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동력장치의 에너지효율은 30~40%정도라고
한다.
나머지는 우리가 사용할수 없는 마찰력 열 등으로 손실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1백의 에너지를 투입해 1백50, 아니 1천의 효율을 얻을 수
있다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무한동력기관이 가능하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양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초효율을 구현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 존재하고
그 성과물도 심심찮게 소개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는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의 30배에서 1백배나 된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는 무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2백배에 이른다.
한국영화는 절대적인 투입량이 적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고 법칙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이 40%선을 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전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적해 얻은
성과로는 기적에 가까웠다.
한국영화 흥행신기록을 깬 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필두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등의 영화들이 골고루 큰 역할을 하며 한국영화의
파워를 과시했다.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가 모든 외국영화 직배사를 제치고 배급성적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필자는 이를 한국영화의 "N-이펙트"라고 부르고 싶다.
놀라운 초효율인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한국영화계는 할리우드 공룡들의 직배
소동으로 들끓었다.
70~80년대를 외국영화 상영수익에만 의존하던 20여개의 한국영화사는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모두 영화만들기를 포기한 채 충무로를 떠났다.
그때는 모두들 "한국영화는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101번째 프로포즈"가 "주라기공원"에 밀려 계약보다 빨리
상영이 중단되는 억울한 일을 당해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다.
영화업계의 주도권은 누가 할리우드의 큰 영화를 먼저 잡느냐에 좌우됐다.
속수무책이었다.
영화를 통제의 대상으로 봤던 과거 정권에서 만들어진 악법들도 한국영화를
고사직전까지 몰고가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는 영화인들의 굳은 의지는 살아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먼저 잡아놓은 극장을 빼앗기는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도 한국영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들
동분서주했다.
이런 영화인들의 노력이 모여 한국영화는 조금씩 관객들의 신뢰를 쌓아갔다.
"문화주권"을 지켜야한다는 열망도 힘을 더해 지난해 다시 한번 한국영화
전성기의 서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여기엔 수많은 영화인들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결집되어 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화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관심의 투입량보다 훨씬 더 많은 산출량을 낸 요인은
영화인들의 땀이었다.
결과가 늘 같아야 과학적이라고 인정되지만 어떤 결과를 발생시킨 보이지
않는 변수들,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던 요소들을 파악해 내는 우리들의
혜안이 열린다면 언제든 결과치를 같게 할 수 있는 조절능력이 생길 것이다.
문화는 언제나 계량가능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경제적으로 빈궁한,
배고픈 분야라고 생각돼 왔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만으로 따진다면 한 사람의 인건비에 불과한 경비로,
엄청난 사회적 정신적 영향을 주어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바꾸기도 하는
문화의 초효율적 가치는 다시 한번 되새겨야 마땅하다.
이제 2000년대의 초입에서 우리사회 전체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모든 정보가 물리적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광속으로 넘나드는 요즘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과거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세계가 초효율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데 자꾸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끌어내리려 해서는 안될 일이다.
자본과 기술력이 절대적 열세일 수밖에 없는 한국영화 역시 지난해의
성과가 일시적인 초효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의 N-이펙트를 이루어낸 많은 영화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격려도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입력보다 출력이 높은 초효율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많은 물질을 쏟아부어도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저효율의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N-이펙트를 발현해 낼수 있는 많지 않은 분야중
하나다.
5천년 문화국가의 에너지를 모아 새 희망의 밀레니엄을 밝혀 나가자.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
1970년 미국의 드 팔머 (De Palma) 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실험하던 중,
입력된 에너지의 양보다 출력이 더 커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상식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 현상을 "N-이펙트 (N-effect)"라고 이름붙였다.
이른바 초효율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동력장치의 에너지효율은 30~40%정도라고
한다.
나머지는 우리가 사용할수 없는 마찰력 열 등으로 손실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1백의 에너지를 투입해 1백50, 아니 1천의 효율을 얻을 수
있다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무한동력기관이 가능하고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양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초효율을 구현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 존재하고
그 성과물도 심심찮게 소개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비는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의 30배에서 1백배나 된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는 무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2백배에 이른다.
한국영화는 절대적인 투입량이 적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고 법칙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영화는 시장점유율이 40%선을 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전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적해 얻은
성과로는 기적에 가까웠다.
한국영화 흥행신기록을 깬 강제규 감독의 "쉬리"를 필두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등의 영화들이 골고루 큰 역할을 하며 한국영화의
파워를 과시했다.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가 모든 외국영화 직배사를 제치고 배급성적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필자는 이를 한국영화의 "N-이펙트"라고 부르고 싶다.
놀라운 초효율인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한국영화계는 할리우드 공룡들의 직배
소동으로 들끓었다.
70~80년대를 외국영화 상영수익에만 의존하던 20여개의 한국영화사는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모두 영화만들기를 포기한 채 충무로를 떠났다.
그때는 모두들 "한국영화는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101번째 프로포즈"가 "주라기공원"에 밀려 계약보다 빨리
상영이 중단되는 억울한 일을 당해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다.
영화업계의 주도권은 누가 할리우드의 큰 영화를 먼저 잡느냐에 좌우됐다.
속수무책이었다.
영화를 통제의 대상으로 봤던 과거 정권에서 만들어진 악법들도 한국영화를
고사직전까지 몰고가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는 영화인들의 굳은 의지는 살아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밀려 먼저 잡아놓은 극장을 빼앗기는 절망스런 상황
속에서도 한국영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두들
동분서주했다.
이런 영화인들의 노력이 모여 한국영화는 조금씩 관객들의 신뢰를 쌓아갔다.
"문화주권"을 지켜야한다는 열망도 힘을 더해 지난해 다시 한번 한국영화
전성기의 서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여기엔 수많은 영화인들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결집되어 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화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 관심의 투입량보다 훨씬 더 많은 산출량을 낸 요인은
영화인들의 땀이었다.
결과가 늘 같아야 과학적이라고 인정되지만 어떤 결과를 발생시킨 보이지
않는 변수들,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던 요소들을 파악해 내는 우리들의
혜안이 열린다면 언제든 결과치를 같게 할 수 있는 조절능력이 생길 것이다.
문화는 언제나 계량가능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경제적으로 빈궁한,
배고픈 분야라고 생각돼 왔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만으로 따진다면 한 사람의 인건비에 불과한 경비로,
엄청난 사회적 정신적 영향을 주어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바꾸기도 하는
문화의 초효율적 가치는 다시 한번 되새겨야 마땅하다.
이제 2000년대의 초입에서 우리사회 전체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모든 정보가 물리적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광속으로 넘나드는 요즘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과거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할 것이다.
세계가 초효율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데 자꾸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끌어내리려 해서는 안될 일이다.
자본과 기술력이 절대적 열세일 수밖에 없는 한국영화 역시 지난해의
성과가 일시적인 초효율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좀 더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맞서 한국영화의 N-이펙트를 이루어낸 많은 영화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격려도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입력보다 출력이 높은 초효율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아무리 많은 물질을 쏟아부어도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저효율의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가.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문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N-이펙트를 발현해 낼수 있는 많지 않은 분야중
하나다.
5천년 문화국가의 에너지를 모아 새 희망의 밀레니엄을 밝혀 나가자.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