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DVERTISEMENT

    [새천년을 열며] (5) 마음속 희망의 불 밝히자 .. 천양희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천양희 < 시인 >

    까치 한 마리가 깍깍거리며 창밖을 지나간다.

    그 소리가 마치 각각 하는 소리 같다.

    새 천년 새날에 무엇이든 깨닫고 살라는 소리같아 옷깃을 여민다.

    지난 세기는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치달려온 세기가 아니었나
    싶다.

    너무 욕심내다 몇번이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만났고 그 위기때문에
    국민들만 혼쭐이 났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은 굳게 닫혀 벽이 됐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
    때문에 옛 풍습도 인정도 미덕도 다리가 무너지듯 무너져버렸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던 인정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던 정신도,
    황금을 돌같이 보라던 청빈도, 고생도 사서 한다던 인내도 지난 세기의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사람나고 돈났지라는 말이,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러면 못쓴다는 말이,
    사람행세를 해야 사람이지라던 말이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커피 한잔값이 시집 한권과 맞먹고 옷 한벌이 쌀 한가마 값보다 훨씬 비싼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진정 무엇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문득 마음 사랑 칭찬 용서 나눔같은 낱말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행여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려 하면서 정작 찾아야할 것들은 찾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이 현실앞에서 정신을 찾아야 풍요로운 삶을 살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말이 될까.

    밥굶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삶터를 잃은 가장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풍족한
    것보다 풍요로운 삶이 생활의 질을 높인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내일 멸망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사과나무를 심기 위해선 헌 땅도 새갈이를 해야 하고 지난날의 허물을 벗기
    위해선 새롭게 탈바꿈을 해야 할 것이다.

    날아다니는 곤충도 날개를 달고 날기 위해서 완전 탈바꿈의 과정을 거친다.

    컴컴한 고치속의 시련과 고통을 넘긴 뒤에야 비로소 날개를 달고 날아간다.

    날아다니는 곤충들은 지독한 시련을 겪고서도 많이 먹지 않고 거저 먹지
    않는다.

    꽃가루를 옮겨주거나 씨를 날라다 주는 공생관계를 반드시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날개가 없는 것들은 공생을 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거나
    훔쳐 먹고 그것도 모자라 남이 찾아놓은 것을 몰래 먹으며 기생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떤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겠다.

    탈바꿈을 하는 것은 털갈이하고는 다르다.

    어느 한 부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탈을 바꾸는 것이다.

    탈을 바꾸려면 우선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발상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결심도 실천도 할 수 없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운명도 바뀐다고 했다.

    개인도 나라도 탈바꿈을 할 때인 것 같다.

    한마리의 곤충도 탈바꿈을 하기 위해 온갖 시련과 고통을 거치는데 하물며
    다른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한마리 곤충이 시련과 고통뒤에 날개를 달고 날듯이 개인이나 국가도 어려운
    과정을 거친 뒤에 반드시 희망의 길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우리에게는 지금 밥처럼 희망이 필요하다.

    용이 품은 여의주가 아니어도 좋다.

    올해는 용의 해이니 용의 기운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그 기운으로 우뚝 일어서서 없는 길도 자꾸 가서 길이 되게 하고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그것쯤이야 하고 겁내지 않게 됐으면 정말 좋겠다.

    정직한 사람들이 더 이상 손해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만큼 잘 살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에겐 희망이다.

    아프리카 어디에는 절망의 섬 옆에 희망봉이 있다고 한다.

    지도에도 없는 길이 희망의 길이지만 그 길이 또 마음의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희망은 반드시 절망 뒤에 온다.

    우리의 삶에서 경험처럼 큰 선생은 없고 그 중에서도 절망은 희망의 선생이
    된다.

    희망의 길은 곧 희망의 나라를 만든다.

    희망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생각해본다.

    사람이 자원이 되고 정신이 자원이 되는 나라가 아닐까.

    따뜻한 밥과 일터가 많은 나라가 아닐까.

    전쟁과 입시와 교통지옥이 없는 나라가 아닐까.

    존경할 어른이 많은 나라, 사표가 되는 부모가 많은 나라, 참스승이 많은
    나라가 아닐까.

    문화가 죽지 않는 나라, 교육이 썩지 않는 나라, 정치가 정화되는 나라가
    아닐까.

    희망의 나라로 귀순하고 싶다.

    새천년 새해에 해맞이한다고 떠들썩하지만 그게 과연 진정한 해맞이일까.

    그게 과연 우리의 희망일까.

    아무리 새해라도 오늘의 해는 오늘로 진다.

    마음안의 해를 뜨게 하는 것, 그것이 더 환한 해맞이, 해의 맞이가 아닐까.

    새로운 해가 떴으니 곧 봄이 올테지만 봄은 봄이 돼도 잔설을 남겨놓는다.

    꽁꽁 얼었던 얼음은 쉽게 녹지않는 법이다.

    이런 저런 위기가 다소 풀렸다고는 하지만 잔설은 남아있다.

    얼음이 서서히 녹아 희망의 강물이 됐으면 좋겠다.

    지금이야말로 희망이 밥처럼 필요한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6일자 ).

    ADVERTISEMENT

    1. 1

      [한경에세이] 결승선에서 깨달은 투자법

      2023년 말, 직장 동료가 들려준 달리기의 즐거움에 매료돼 러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숨이 가쁘고 쉽게 지쳤지만, 새벽과 주말을 활용해 조금씩 거리를 늘려갔다. 꾸준히 달리다 보니 작년에는 하프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의 성취감은 컸다. 단기간의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의 결과여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첫 도전이었기에 목표는 그저 완주였다. 동료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준 덕분에 여유 있게 몸을 풀고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었다. 초반 워밍업이 끝나자 자신감도 붙었다. 새로 산 경량 러닝화 덕분인지, 대회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몸도 가볍게 느껴졌다. 문득 어쩌면 2시간 안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마저 들었다. 계획보다 조금은 빨리 달려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페이스를 올려가던 중 17㎞ 지점을 지난 오르막길에서 급격히 체력이 소진됐다. 황급히 에너지 젤을 먹고 이온 음료도 마셔봤지만 한번 떨어진 페이스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곧 가벼운 조깅 속도마저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어찌어찌 버티면서 결승선까지는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제야 수많은 달리기 선배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초반 스퍼트의 위험성과 꾸준한 페이스 유지의 중요성을.최근 많은 투자자가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를 느끼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다급해지고, 급등장을 보고 있노라면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레버리지를 활용하면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이럴 때일수록 &lsq

    2. 2

      통영의 봄날, 시와 음악과 도다리쑥국…[고두현의 문화살롱]

      얼마나 애틋했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을까. 북방 시인 백석은 남쪽 끝 통영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친구 결혼식에서 한눈에 반한 통영 출신 이화여고생 ‘난(蘭, 본명 박경련)’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짝사랑하는 여인은 거기 없었다. 갈 때마다 길이 엇갈렸다. 낙심한 그는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아 울 듯 울 듯 손방아만 찧었다.당시 그는 경부선 열차를 타고 삼랑진을 거쳐 구마산역에 내린 다음 객줏집에서 자고 뱃길로 반나절 더 가서 통영에 도착했다. 그 먼 길에 어렵사리 꺼낸 청혼은 거절당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더 강렬하고 기억도 오래간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이가르니크 효과’ 혹은 ‘미완성 효과’ 때문일까. 백석에게 통영은 못다 한 사랑과 미완의 결핍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항구다. 어쩌면 그 덕에 통영의 역사가 더 풍요롭고, 서정과 서사의 폭도 넓어졌는지 모른다. 청마문학관엔 빨간 우체통이90년 전 그의 회한을 되짚으며 봄맞이 통영 기행에 나섰다. 옛 이틀 길을 고속버스로 네 시간 만에 닿았다. ‘난’이 살던 집 주소는 명정동 396.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눈이 크고 코가 높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한 그녀의 옛집 건너편엔 오래된 우물 두 개 ‘명정(明井)’이 나란히 있다. 다정한 부부 같다. 맞은편 공원의 시비에는 백석의 시 ‘통영 2’가 새겨져 있다. ‘미역 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구절이 유난히 애처롭다.명정동에서 서피랑 골목을 끼고 강구안으로 가는 항남동 길에도 백석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이곳은 청마 유치환과 김춘수

    3. 3

      [강경주의 테크 인사이드] 중국이 전인대에서 BCI 언급한 이유

      “딸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입니다.”‘Isn’t she lovely’라는 명곡을 작사·작곡한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이다. 임신 35주 만에 태어난 조산아였던 그는 신생아 집중치료를 받던 중 간호사의 실수로 인큐베이터에 산소가 과다 유입되는 사고가 발생해 시력을 잃고 만다. 병명은 미숙아 망막병증. 눈이 덜 자란 상태에서 과도한 산소 치료를 받다가 망막이 손상된 경우다. BCI, 산업 패권 좌우한다스티비 원더는 시력을 잃었지만 탁월한 음악성을 발휘하면서 어릴 때부터 음악 천재라는 얘기를 들었다. 마이클 잭슨을 배출한 미국의 전설적인 흑인 음악 음반사 모타운 레코즈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영입했을 때 스티비 원더의 나이는 불과 11세. 앞을 볼 수 없던 천재 소년은 모타운 소속으로 음악 활동을 하다가 작곡가인 시리타 라이트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20세가 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딸 아이샤 모리스를 품에 안았지만 스티비 원더는 딸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마음을 담아 곡을 썼고 딸의 얼굴을 수없이 머릿속에 그렸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Isn’t she lovely’는 이렇게 탄생했다.과거엔 스티비 원더의 꿈은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아니다. 생각만으로 컴퓨터, 로봇을 다루고 시각장애인이 앞을 보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시대가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BCI는 뇌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외부 장치를 제어하는 ‘꿈의 기술’로 불린다. 미국 특허상표청(USPTO)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BCI 기업 뉴럴링크는 ‘블라인드사이트’ &lsquo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