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술투자는 1월부터 사내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벤처캐피털 업계 첫 시도다.

이 회사의 서갑수 사장이 지난해 12월 미국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를 다녀온 후 이런 방침을 세운 것.

한국 벤처캐피털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아무리 좋아도 영어로 설명하지
못하면 해외 투자기관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해 실행키로 한 것이다.

한국기술투자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걱정반 기대반이다.

로이터통신 기자 출신으로 영어가 본토인 수준인 이정호 팀장과 서갑수
사장만이 느긋한 편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국제화 시대를 맞아 영어는 필수라고
생각해 오면서도 시간이 없어 공부를 못했는데 이참에 한번 해보자고
다짐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혹시 창피를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들이다.

한국기술투자는 또 기업 분석.심사능력과 영어구사력을 겸비한 유원희 이사
를 이달 실리콘밸리 연락사무소에 상주시킬 계획이다.

미국 투자기관들의 펀드자금을 유치하고 이들과의 협력으로 현지 벤처기업을
본격적으로 발굴 투자키 위해서다.

한국기술투자와 같이 국제화에 나서는 벤처캐피털들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대개 그러하듯 벤처캐피털도 과거엔 해외 동향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벤처캐피털의 경영진들이 대부분 국내 지향적인 인물인 데다 벤처펀드
규모가 크지 않았고 정부의 해외투자 규제도 있어 국제화에는 소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2년여 사이에 상황은 급변했다.

30~40대의 젊은 해외 유학파 등이 벤처캐피털회사의 경영진에 대거 발탁됐고
벤처산업 육성책에 힘입어 벤처펀드 규모도 커졌다.

정부의 해외투자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게다가 한국종합기술금융(KTB) 한국기술투자 등 일부 벤처캐피털에서 미국
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는 성공사례가 나와 업계를 자극했다.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국내 벤처투자의
메리트가 줄어든 것도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한 요인이 됐다.

이런 가운데 새해에도 한국 벤처캐피털은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계 미국 인터넷 기업인 아시아네트가 1월중 나스닥 상장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

이 회사에는 대구창업투자 한미창업투자 등이 10억원 이상을 투자해놓고
있어 수십배의 투자차익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LG창투 한림창투 TG벤처(옛 한국개발투자금융) 등도 해외투자에 적극적이다.

LG창투는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검사장비업체인 르바테크놀로지와 정보통신
업체인 밀리트론 및 싱크프리, 한림창투는 원자핵 폐기물 처리기술 보유업체
인 미국 멜트란사에 투자해놓고 있다.

무한기술투자의 경우 지난해 10월 미국 실리콘밸리뱅크사와 벤처투자 업무
전반에 걸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실리콘밸리뱅크사로부터 투자유치와 함께 생명공학 정보통신 등 분야의
선진투자 기법을 전수받게 된다.

LG창업투자는 세계적 회계컨설팅업체인 미국 KPMG로부터 컨설팅을 받아
선진형 투자회사 가치평가 기법을 도입했다.

한국 벤처캐피털의 국제화는 투자한 국내 벤처기업들의 국제 마케팅을
지원키 위해서도 필요한 과제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은 상호 동반자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5일자 ).